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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영 화백, 격동의 시대에 韓 시사만화의 초석을 쌓다 [역사&오늘]

뉴스1 김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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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한국 최초의 시사만화 연재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화 (출처: 위키 백과, public domain)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화 (출처: 위키 백과,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09년 6월 2일, 이도영 화백이 대한민보에 삽화를 게재하면서 한국 최초의 시사만화가 탄생했다. 오늘날 한국 시사만화의 중요한 뿌리이자 한국 만화 발전의 시금석이 된 순간이었다.

이도영 화백은 한국 근대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로, 동양화와 서양화를 넘나들며 폭넓은 작품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가 '대한민보'에 연재한 '삽화'는 단순히 그림을 넘어선 역사적 의미를 지녔다.

당시 일제의 침략과 국권 상실의 위기 속에서 '대한민보'는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일제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중요한 언론 매체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삽화'는 그림이라는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대중에게 시사 문제를 쉽고 빠르게 전달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이도영 화백은 주로 친일파의 매국 행위, 일제의 침략 야욕, 무능한 지배층을 풍자했다. 당시 문맹률이 높았던 상황에서 그림은 글보다 훨씬 강력한 메시지 전달 수단이었다. '삽화'는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인물 표현과 상징적인 그림을 통해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이는 대중의 분노를 자아내고 독립 의지를 고취하는 데 기여했다.

이도영 화백은 1910년 8월 31일 ‘대한민보’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될 때까지 약 1년 2개월 동안 꾸준히 시사만화를 그렸다. 비록 짧은 기간 연재됐지만, 그의 삽화는 한국 시사만화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그림을 넘어, 사회 비판과 풍자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사만화의 효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뒤를 이어 많은 화가가 시사만화를 통해 시대정신을 담아냈으며, 오늘날까지 시사만화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도영 화백의 '삽화'를 통해 격동의 시대 속에서 예술가들이 어떻게 현실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냈는지 되새겨볼 수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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