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 문학평론가·인하대 명예교수
이제 며칠 뒤면 대한민국에 내란 이후의 새로운 질서가 수립된다. 12·3 내란사태 이후 반년 만에 헌정질서 회복의 시간이 임박한 것이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내란세력의 마지막 발악이 소란스럽고, 민주 헌정의 복원력에 대한 기우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하더라도 시대착오적 내란을 응징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이 배신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헌정 수호세력은 승리할 것이고 내란세력은 패배한다. 다른 결과는 있을 수가 없다. 내란 수괴를 비롯해서 내란을 획책하고 실행했던 세력 상당수가 여전히 자유롭게 세상을 활보하고 범죄 증거를 인멸하며 호시탐탐 반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음에도 지난 반년 동안 민주 헌정 수호세력과 불퇴전의 민주 시민들은 단호하면서도 슬기롭게 온갖 난관들을 이겨내왔다. 친위 쿠데타는 실패하기 어렵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림도 없다.
내란세력의 지속적인 저항으로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 결정의 예상치 못한 지연, 내란 수괴 윤석열 구속을 둘러싼 극우세력의 공공연한 저항과 황당한 구속 취소, 대법원의 노골적 선거 개입,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후안무치한 대선 출마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했고, 내란 수괴를 배출하고 또 그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면서 온갖 추악한 행태를 서슴지 않았던 언필칭 여당이라는 정당이 막장 드라마 같은 선출 과정을 거친 끝에 민주화 운동의 대의를 배신하는 것을 넘어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무장하고 태극기 부대의 선봉에 서 왔던 극우 파시스트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제 며칠 뒤면 이토록 우스꽝스럽고 역겨운 반동세력들과는 영영 이별이다. 이른바 콘크리트 극우보수 지지층이 결집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이번 선거의 주역이 될 수 없다. 내란 수괴를 배출한 정당과 그 정당을 지지한 세력들은 이번 선거에서 감히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할 자격이 없다.
이번 선거의 주역은 계엄령이 내려진 국회 안팎에서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고 장갑차의 진주를 막아서고, 봉쇄를 뚫고 본회의장에 집결해서 계엄 해제 요구를 관철하고, 탄핵소추를 의결하고, 광화문에서 한남동에서 헌재 앞에서 오색 응원봉 물결을 일으키고 눈 오는 거리에서 키세스 비박을 서슴지 않으며 남태령에서 농민 시위대 트랙터 행렬에 길을 열어주고, 수많은 날들을 노래하고 춤추며 서로 연대하고 힘을 북돋우며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지켜온 주권자 민주 시민들과 그 충직한 종복들인 민주 정치 세력들이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통령 선거는 바로 이 주권자 민주 시민들, 헌정 수호세력들의 한바탕 축제의 피날레가 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 서지 않은 모든 태도는 민주 헌정과 주권자 시민에 대한 우롱이자 배신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는 기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서 치르는 정상적인 선거가 아니라 내란을 일으키고 쫓겨난 범죄자 대통령의 후임을 선출하는 비상 상황에서 치르는 선거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대통령 선거이자 동시에 내란세력에 대한 단호한 심판과 척결의 과정이다. 따라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내란세력을 철저히 심판할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일이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내란의 정당화이자 부활에 다름 아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지난 반년 동안 민주 시민들의 절대적 공감대에 의해 구축된 헌정 수호 연대 세력의 승리를 통해 다시는 자의적 헌정 중단 시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질서를 재구축하고 한국 정치의 판 자체를 완전히 새로 짜는 원점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기 당의 정체성을 중도보수 정당이라 규정한 제1야당 대표의 지난 2월의 발언을 주목한다. 나는 이를 한편으로는 제1야당이 단지 극우보수 정당과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가짜 진보-보수 구도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내란 종식과 헌정 회복이라는 과제를 중심으로 헌정 수호세력을 광범하게 아우르는 중도통합형 정치 주체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극우보수 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획기적으로 억제하고 왜곡된 진보-보수 정치 지형에 의해 성장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명실상부한 진보 정치 세력에 정치적 활로를 열어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내란 이후 새로운 판을 짜는, 새로운 정치 지형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시작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이번에 출발하게 되는 새 정권은 이 새로운 정치 지형을 토대로 하는 한국 사회의 대개혁을 절대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와 다음 총선까지 포함해서 명실상부한 중도보수 세력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진보 정치 세력이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정도의 중견 정당으로 성장하며 나머지 소수 정당들이 적절한 정치 지형을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공화정의 시작이다. 이번 대선에서의 압도적 승리란 특정 정당 후보만의 압도적 승리가 아니라 헌정 수호세력 전체의 압도적 승리를 뜻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곧 내란세력, 곧 극우보수 세력의 압도적 패배와 같은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승리는 당연히 중도보수 세력과 진보 정치 세력 모두에 의미 있는 승리여야 한다. 응원봉 연대를 비롯한 ‘빛의 혁명’ 주체의 꿈은 내란 진압을 넘어 한국 사회의 진보적 재구성을 향한 것이었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양극화에 의해서, 구조화된 차별과 배제에 의해서 어떤 정치적 대표성도 얻지 못했던 노동자, 여성을 비롯한 절대다수의 소외된 구성원들의 절박한 요구가 꾸어온 해방의 꿈, 새롭게 짜이는 정치판은 이 꿈을 현실로 만드는 희망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
승리의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우리는 좀 더 담대하고 좀 더 자유로워도 좋다. 자신의 진보적 입장과는 달리 선거 때만 되면 극우보수 세력 집권을 막는 총력전에서 자유주의 중도보수 정치 세력에 투표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 같은 것은 이제 잊어도 좋다. 헌정질서 문란의 주역인 극우보수 세력의 집권은 이제 불가능하다. 자신이 안정과 점진적 변화를 선호하는 중도보수 헌정 수호세력이라면 그 후보에게 표를 던지고, 자신이 더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의 꿈을 가졌다면 진보 후보에게 표를 던지면 된다. 이번 대선은 비 온 뒤에 더 단단해지는 대지와 같이 민주공화국의 헌정질서가 다시 굳건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며, 극우보수의 정치적 몰락과 진보 정치 세력의 도약이 현실화하는 역사적 전환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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