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환산하더라도 차기 정부 5년 임기 동안 집행될 총예산은 3천385조원 규모에 이른다.
이를 전체 유권자 수 4천439만명으로 나누면, 유권자 1인의 한 표가 행사하는 재정적 영향력은 약 7천625만원에 달한다.
추상적인 민주주의의 가치를 넘어서, 현실적으로도 한 표는 세금의 방향과 국가의 우선순위를 결정짓는 실질적 수단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투표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는 여전히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기회를 외면한 개인이 스스로 그 변화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투표는 단순한 행위가 아닌, 예산 편성의 흐름과 사회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참여의 시작점이다.
예산은 곧 삶이다.
복지 지출, 주거 안정, 청년 고용, 고령자 돌봄, 국방, 교육, 육아, 지역 균형발전 등 시민이 마주하는 거의 모든 공공 서비스는 예산을 통해 실현된다.
이 거대한 결정은 정부의 독단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정치 세력의 판단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정치는 나와 무관하다"는 무관심은 스스로 공공 자원의 배분 과정에서 이탈하는 것이며, 장기적으로 삶의 기회와 질에 심각한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특히 청년층의 투표 참여율은 여전히 낮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20대 투표율은 65.3%로 전체 평균인 77.1%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는 청년의 목소리가 정치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소외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정책의 수혜 대상이면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참여 확대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투표빵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투표하면 빵을 드립니다"라는 단순한 메시지로 참여의 문턱을 낮춘 이 캠페인은 수백여 개의 소상공인 매장에서 자발적으로 확산되었고, 일상의 소비 활동과 정치 참여를 연결시켰다.
더 나아가 대학가 중심의 청년 조직들은 후보자 인터뷰, 정책 비교 콘텐츠 제작 등을 통해 '선택 가능한 정치'를 체감하게 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해외의 사례는 보다 제도적이다.
오스트리아는 만 16세부터 투표권을 부여하며, 청년층의 조기 정치사회화를 유도하고 있다.
스웨덴은 고등학교에서 모의 선거를 진행하며 시민교육을 정규화하고 있으며, 독일의 'U18 프로젝트'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모의 투표와 정치교육을 연계해 미래 유권자로서의 역할을 훈련시킨다.
이러한 접근은 정치에 대한 체감도를 높이고, 유권자로서의 자기 효능감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 표는 단지 권리가 아니다.
사회적 계약의 청구서이며, 미래에 대한 투자 결정이다.
우리는 기업에 투자할 때 CEO의 철학, 재무 건전성, 미래 전략 등을 꼼꼼히 따지듯이, 선거에서도 후보자의 공약과 이력, 정책적 일관성을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
7천625만원 규모의 예산 집행권을 위임하는 일이 단발적 이벤트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외면하는 한 표는 수년 뒤 우리 아이의 교육비, 청년의 주거 조건, 부모의 복지 수준, 지역의 교통 인프라, 나의 노후를 결정짓는 현실이 되어 돌아온다.
다시 말해, 투표는 현재의 권리를 행사함과 동시에 향후 삶의 설계에 참여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지 선거일에 발생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그 출발점은 투표함 앞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나의 한 표는 7천625만원 이상의 정책 영향력을 가진 주권의 실체다.
더 이상 무력한 개인이 아니라, 예산과 제도를 결정하는 실질적 주체로서,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정치적 선택은 곧 우리의 삶과 직결된다.
최호택(배재대 행정학과 교수, 한국자치경영연수원 원장) 세상의눈,사전투표,선거,대선,유권자,민주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