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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씨나락이 씨가 말랐어유”…이상기온으로 못자리 실패 농가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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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충남 논산시 은진면 육묘장에서 박종대(왼쪽)씨와 김동희(오른쪽) 논산시 농업기술센터 농업지도사가 생육이 부진한 못자리를 살펴보고 있다. 송인걸 기자

지난 19일 충남 논산시 은진면 육묘장에서 박종대(왼쪽)씨와 김동희(오른쪽) 논산시 농업기술센터 농업지도사가 생육이 부진한 못자리를 살펴보고 있다. 송인걸 기자




생육이 부진한 모판은 모의 초장이 짧았고 발아가 안된 씨나락(원안)도 적지 않았다. 송인걸 기자

생육이 부진한 모판은 모의 초장이 짧았고 발아가 안된 씨나락(원안)도 적지 않았다. 송인걸 기자


“이래서 모내기 하겄슈? 예년 같으면 벌써 수월찮게 심었을 틴디.”



본격적인 모내기 철에 접어든 지난 19일 충남 논산시 은진면 시묘리 들녘은 낮게 드리운 먹구름 아래 봄바람이 강하게 불어 서늘했다. 물을 댄 논은 모 대신 물결이 가득했다.



박종대(71)씨가 육묘장에서 부직포를 벗기고 모판을 보여줬다. 신동진벼 못자리는 빼곡하게 잘 자라 며칠 뒤에는 논에 심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한쪽의 미르찰벼 못자리는 휑할 정도로 생육이 좋지 않았다. 박씨가 들어 보인 모판은 싹이 나지 않은 씨나락(종자벼)이 잔뜩이었다.



박씨는 이 동네에서 태어나 평생 벼농사를 지었다. 은진 일대에서 내로라하는 농사꾼인 그가 못자리를 실패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그는 “못자리에 실패해 모판을 엎고 새 못자리를 만드는 농민들이 적지 않다. 동네 씨나락이 씨가 말랐다”고 전했다.



충남에서 이상기온으로 못자리를 실패한 농가들이 잇따르고 있다. 한겨레가 홍성·부여·논산·천안 등 충남 주요 시·군을 취재한 결과, 약 5~30% 농가가 못자리를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홍성군은 못자리 실패 농가가 150여 농가에 이르자 관내 2천여 농가에 대해 전수 조사를 하고 있다.



10년 평균 벼 등숙기 평균 온도(점선)와 지난해 이상 고온(선) 비교 그래프. 충남도 농업기술원 제공

10년 평균 벼 등숙기 평균 온도(점선)와 지난해 이상 고온(선) 비교 그래프. 충남도 농업기술원 제공


씨나락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은 지난해 벼가 익는 등숙기(8월 중순부터 약 40일)에 이상 고온과 강우가 한 달 이상 계속돼 이삭에서 싹이 나고(수발아 현상) 종자의 전분이 녹으면서 활력도가 떨어진 데다 올 봄에 저온 현상이 겹쳤기 때문이다. 윤여태 충남도농업기술원 쌀연구팀장은 “등숙기 동안 평균 온도가 23도일 때 가장 좋은 벼를 수확할 수 있는데 지난해는 평균 온도가 25.9도로 높았고 가을비가 잦았다. 싹이 나고 활력이 떨어지면서 벼의 무게가 가벼워지자 농민들이 미곡종합처리장(RPC)에 ‘벼 빼돌렸다’고 항의하는 일도 잦았다”고 말했다.



실태조사에 나선 충남도는 지난 16일 현재 태안 60농가(35㏊), 홍성 56농가(22㏊), 아산 50농가(50㏊), 논산 30농가(12㏊) 등 11개 시·군의 271농가의 모판 9만9050개(파종 면적 194㏊)에서 발아 불량 현상이 발생했다고 21일 밝혔다. 천안·계룡·부여 등 3개 시·군은 피해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농민들은 못자리 피해가 실태조사를 크게 웃돈다고 말한다. 천안 쌀전업농 모임은 240여 회원농가 가운데 적어도 80농가가 모판을 엎었다고 밝혔다. 강종양 천안 능수쌀, 흥타령 친목모임 회장은 “한 농가가 평균 150마지기(3만평)를 짓는다. 수발아 등 종자 문제에 더해 올해는 밤 온도가 예년보다 3~4도 낮은 6도에 그치는 등 일교차가 15도 이상이어서 못자리 실패 농가가 늘고 있다”며 “기온이 오를 때까지 모를 키우거나 새로 모판을 해야 해 올 모내기는 지난해보다 보름 이상 늦은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이 될 전망”이라고 했다. 부여군 역시 1만176농가(벼 재배면적 9868㏊) 가운데 약 5%(500여 농가)가 못자리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부여군의 한 농업인은 “규암농협에서 500㏊ 규모의 추가 육묘를 하는 등 기관들이 대책을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홍성군 농업기술센터는 모내기를 못 하는 농가를 위해 씨나락 1톤을 확보하고 벼 직파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



농민들은 올가을 등숙기에 이상 고온 현상이 재현하면 쌀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농업전문가는 “통계청은 지난해 쌀 수확량이 2% 줄었다고 발표했으나 농민단체와 미곡처리장은 약 15~20%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생산량은 줄고 일본 수출까지 시작되면서 농민들은 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실제 찹쌀의 경우 80㎏ 벼 기준으로 지난해 17만~18만원에서 현재 30만원까지 올랐다”고 밝혔다.



충남도 농업기술원은 못자리 실패 대책으로 △지역 별로 모판은행을 운영해 남는 모판 활용 △중·만생종 씨나락 확보 △발아 불량 씨나락 선별 △모판 재사용 시 소독할 것 등을 당부했다. 윤여태 도 농업기술원 쌀연구팀장은 “6월 중순에 늦은 모내기를 하면 늦더위를 피할 수 있다. 종자 벼는 수확 시기를 늦추는 것이 다음 해 모판의 발아 불량을 줄이는 대안”이라며 “올해 발아·출아가 늦은 것은 종자의 활력이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노지는 물론 육묘장 못자리에도 부직포를 사용해야 보온 효과가 있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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