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농민운동에 헌신해온 고 김준기 교수 |
1980년대 독재 정권의 농촌 수탈 정책을 비판하는 잡지를 창간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른 농민운동가 고 김준기씨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을 내렸다. 김씨는 이 결정을 보지 못한 채 지난 2023년 세상을 떠났고 유족들은 재심을 신청하기로 했다.
진실화해위는 고 김준기씨(1938년생)가 1989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수사를 받을 당시 가혹 행위를 당하고 변호사 접견을 금지당하는 등 중대한 인권 침해를 겪었다며 지난 4월 진실규명을 결정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피해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명예 회복을 위한 조처를 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신구전문대학 원예학과 교수로 평생 농민운동에 헌신한 김씨는 1989년부터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자통) 대변인을 맡아 활동했다. 그는 그해 잡지 ‘월간 함께하는 농민’을 창간하고 ‘농촌의 피폐한 현실이 역대 독재정권의 농촌 수탈정책에 기인했다’는 내용의 원고를 대학신문에 기고했다는 이유로 안기부에 검거됐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1990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김씨에게 징역 1년6개월 및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보면, 안기부 조사 당시 김씨는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게 하거나 종일 벽을 바라보고 서 있게 하는 등의 가혹 행위를 당했다. 김씨는 안기부 수사관들로부터 “임수경을 북한으로 보냈다고 자수하는 내용을 (진술서에) 쓰라”는 강요를 받았고, 변호인 접견도 금지당했다. 당시 김씨는 안기부를 상대로 ‘변호인 접견금지 취소’를 요구하는 준항고를 내서 법원에서 “헌법상 허용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은 위법 부당”하다는 판단을 받아내기도 했다.
김씨가 진실화해위 진실규명을 신청하게 된 것은 딸 하정(51)씨의 권유 덕분이었다. 하정씨는 “아버지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다녀온 걸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는데, 제가 돌아가시기 전에 혐의를 벗겨 드리고 싶어 설득을 했다”며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셔서 이 결론이 반갑다기보다는 허탈하고 심란한 마음이 크지만, 국가의 사과 권고까지 받았으니 재심을 청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023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38년 9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김씨는 서울대 농대 재학 중 학생 동아리 ‘농사단(農士團)’을 만들었고, 당시 대학 동기인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만든 ‘농민가’ 초안을 함께 다듬기도 했다. 대학 졸업 뒤 한국가톨릭농민회(가농) 초대 부회장을 지냈다. 그는 성남 지역 농민·빈민·신협 운동에도 관여했고, 1981년 성남 와이엠시에이(YMCA)를 창립했다. 1988년 민중의당 창당에 참여했고 2002년에는 경기도지사 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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