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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쪽방·옥탑방 잊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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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네트워크,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등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월대 앞에서 주거권 관련 21대 대선 정책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거권네트워크,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등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월대 앞에서 주거권 관련 21대 대선 정책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나의 살던 고향은” 하며 노래할 만한 고향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강릉에서 청소년기 대부분을 보냈으니 그립기도 하고, 종종 추억하며 고향 느낌을 내곤 하지만, 딱 잘라 ‘고향’이라고 말했다가는 토박이들에게 혼쭐이 날 것이다. 가끔 교외 드라이브라도 나가면, ‘공기 좋다!’ 외치는 스스로를 보면서 이젠 서울이 고향이겠거니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만일 내가 더 이상 서울 사람이 아니게 된다면 고향인 서울을 떠올리며 무슨 풍경이 생각날까 상상해본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30년쯤 된 구 빌라가 늘어선 풍경, 반쯤 부서졌는데 언제 보수할지 기약은 없는 담벼락과 그 담벼락 위에서 햇볕 쬐는 태평한 고양이. 점심 때 되어가는 늦은 아침, 그 골목을 걷다 보면 발목에서부터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올라오는 냄새가 있다. 생선 굽는 냄새, 나물 무치며 번지는 참기름 냄새. 그런 풍경을 떠올리겠다.



발목에서부터 올라오는 밥 냄새는 아마 서울 고유의 풍경일 것이다. 아래로부터 반쯤 솟은 주방 창문 앞 지글거리는 소리와 냄새. 밥때 되면 서울의 낡은 골목은 그런 냄새로 가득 찬다. 반지하로부터 가슴팍 1층 주방과 머리 위 2층 주방까지, 서울의 골목을 떠올리면 나는 온몸 휘감는 밥 냄새를 생각해낼 것이다. 그리고 이 풍경의 일부는, 반드시 지나간 ‘추억’이 되어야 한다.



이 공고한 양당 체제 속에 과연 ‘공약 선거’라는 게 있는가 싶긴 하지만, 그래도 활동가들은 대선 시기가 되면 뚫어져라 공약집을 본다. 지난 선거 이후 세상이 바뀌긴 했는지, 사라지고 잃어버려야 했던 이름들만큼 더 짙게 쓰인 공약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샅샅이 본다. 전세 사기로 집을 잃은 이들. 그러다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사람들. 매년이 기록 경신이라며 속보가 뜨는 폭염 속 쪽방촌 사람들과 거리의 홈리스들. 끔찍했던 2022년 여름, 반지하 폭우 참사로 우리 곁을 떠나야 했던 그 이름들. 그사이 주저하는 일 없이 오르는 집값, 부동산 찬가, 이제 곧 나라가 망한다는데 그 어떤 가치 하나 생산 못 하는 부동산에 기대 간신히 버티는 이 위태로운 시스템과 폭발 직전의 불안이 넘실거리는 거대한 도시.



공약집을 봐도 그 이야기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부동산은 건들 수 없다거나, 신도시를 개발하고 용적률을 올리며 개발·재건축 시간을 단축해 활성화하겠다는 이. 종부세를 폐지하겠다는 이. 아무 고민 없이 규제를 타파하겠다는 말만 외치는 이. 아, 그이들의 도시는 대체 어떤 풍경일까. 이 풍토 속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목소리 높이는 진보 후보 한명만이 적어뒀다. ‘주거권’.



이제 주거를 권리라 말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가난한 동네를 상품으로 보지 않는 정치, 개발을 하더라도 대책부터 세우고 떠날 수 없는 처지의 도시민을 수용할 수 있는 그런 개발정책, 호우에 물이 들이닥치지 않는 집, 폭염에 거리와 쪽방으로 내몰리지 않고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집, 삶의 풍경이 변해도 변함없이 살 수 있는 집. 마치 인간이면 누구나 배곯지 않아야 하듯, 인간이면 누구나 권리로서 인간답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집을 말하는 정치. 그러니 주거는 권리라고 말하는 후보와 정책, 그런 정치를 보고 싶다. 반지하와 쪽방, 옥탑방이 그 옛날 추억이 되고, 영어 이름 아파트 대단지도 촌스런 옛 추억으로 남겨두고, 사람이 살 만한 도시를 꿈꾸는 이들의 정치를 보고 싶다. 그런 정치가 넘실거리는 도시의 밥 짓는 냄새를 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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