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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비호세력, 누구 지칭하는 겁니까?”…인권위의 어떤 논쟁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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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위원들이 26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제11차 전원위원회에 참석해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위원들이 26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제11차 전원위원회에 참석해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내란 비호세력이라고 누구를 지칭하는 겁니까?”



강정혜 위원이 날카롭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거야말로 명예훼손이고 모욕이죠. 누가 비호를 했어요?” 강 위원은 높은 목소리로 “그때(‘윤석열 방어권 보장’ 의결한 전원위에서) ‘계엄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발언도 나왔다. 누가 내란 비호세력이냐”고 따졌다. 한석훈 위원도 거들었다. “내란에 동조한 사람 아무도 없어요. 객관적 입장에서 인권 원칙에 입각해 공정하게 판단을 했는데 그걸 함부로 내란 비호세력, 계엄 옹호세력 이따위로 표현하는 언론이나 위원은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간리) 승인소위(SCA) 사무국에 제출할 특별심사 답변서를 심의한 지난 26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제11차 전원위원회를 방청하는 동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 권고안 의결에 찬성표를 던진 인권위원들이 한 목소리로 공세를 펼치는 자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에도 그들은 “비상계엄에 대해 인권위가 적절하고 정당하게 대응했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비판하는 위원과 직원, 외부 인권활동가가 인권을 정치화하며 인권위의 독립성을 침해하기 위해 압력을 넣는 이들로 보였던 걸까.



전원위 회의 중 거센 논쟁의 버튼이 눌린 계기는 원민경 위원 발언이었다. 원 위원은 비상계엄 이후 전원위에서 (시민 기본권 침해에 대한) 직권조사 안건이 부결되고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이 가결된 데 이어 군인권보호위원회(군인권소위)에서 계엄 연루 장성들에 대한 불구속 수사 권고안 등을 낸 사실을 지적하며 “인권위가 그동안 내란 비호세력에 편중돼 있었던 부분을 간리 답변서에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석열 방어권’ 안건에 찬성했던 안창호 위원장과 김용원·한석훈·강정혜·이한별 위원이 인권위 전원위에서 다수파였다. 이들은 계엄과 관련한 인권위의 성찰을 간리 답변서에 기술하자는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다.



“인권위 결정이 지금도 잘됐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잘라 말한 안창호 위원장은 ‘내란 비호세력’이라는 비판에 작심하고 발언을 이어갔다. 안 위원장은 “계엄이 계속됐다면 인권위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계엄이 즉시 해제됐다”고 했다. 이어 2010년 비상사태 해제를 건의한 타이(태국) 인권위원회(NHRC)를 언급하며 “태국의 경우 (인권위원장이 행동한 것은) 비상계엄이 계속됐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또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 여부는 헌재와 법원에서 판결하도록 돼 있다. 인권위가 이를 사전에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고, “(계엄령 이후 상황에 관해)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면 동원된 군인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향후 조사하겠다는 군인권보호관의 발표가 있었다”며 인권위가 책무를 다했다고 강변했다.



이날 4시간여의 전원위가 끝난 뒤 안 위원장을 비롯해 인권위 다수파 위원들의 논리를 곱씹어보았다. 계엄을 바로 해제했으므로 할 게 없었던 걸까? 윤 전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계엄을 해제한 건 아니었다. 한밤중에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과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린 언론, 계엄 해제안을 의결한 190명의 국회의원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그러고도 시민들은 헌재의 파면 결정 전까지 밤잠을 설치며 불안해했다. “헌재와 법원이 판결하는데 인권위가 사전에 위법·위헌을 판단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대목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안창호 위원장 등은 ‘윤석열 방어권’에 대해선 헌재와 사법부 판결이 나지도 않았는데 개입했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강정혜 위원이 모욕적으로 느낀 ‘내란 비호세력’이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당시 전원위 회의 내용을 복기해 보면, 원민경 위원은 인권위원들을 가리켜 ‘내란 비호세력’이라고 말한 것 같지는 않다. “내란 비호세력에 편중돼 있다”고 비판한 것으로, 뉘앙스에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고, 내란 행위 여부는 대법원 최종판단까지 기다려야 하며, 그 장고한 세월 동안 대통령 등을 구속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다수파 위원들은 “내란 비호세력”이라는 표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인권시민단체 활동가들 눈에 다수 인권위원들은 ‘내란 비호세력’으로 비친다. 김덕진 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은 28일 한겨레에 “인권위는 내란 직후 비상계엄이 민주주의와 국민 인권을 침해했다고 선언하고 이를 바로잡는 권고를 해야 했음에도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 없이 12월11일 위원장이 내용 없는 성명만 발표했다. 침묵은 동조다. 결국 내란 비호세력임을 증명한 것”이라고 했다.



계엄 당일 국회 유리창을 부수고 진입하던 계엄군을 막으며 공포를 느낀 이들의 인권침해보다 계엄을 선포한 이의 인권을 더 중요시한 인권위가 결국 간리로부터 어떤 심판을 받을지 두고 볼 일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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