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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의 시간은 끝났다…손창환, 성실과 전략으로 ‘진짜 소노’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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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전력분석원으로 묵묵히 뒤에서 팀을 도왔던 손창환 코치가 고양 소노 새 수장이 됐다. 휴가도 반납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인 그를 최근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만났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우리나라 최초의 전력분석원으로 묵묵히 뒤에서 팀을 도왔던 손창환 코치가 고양 소노 새 수장이 됐다. 휴가도 반납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인 그를 최근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만났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60페이지에 달하는 시즌 마무리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 그는 그 중요한 전화를 받았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굉장히 복잡했어요. 팀의 미래가 달려있으니 제 욕심만으로 오케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느냐를 깊이 고민했죠.”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가능할 것 같다. 해보자”였다. “구상을 현실화하겠다”며 휴가도 반납하고 일에 몰두 중인 고양 소노 새 수장 손창환(49) 감독을 최근 경기도 고양시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만났다.



이번 시즌 뒤 남자프로농구(KBL) 수장이 대거 교체됐다. 무려 5명. 이상민(부산 KCC), 양동근(울산 현대모비스), 문경은(수원 KT), 유도훈(안양 정관장)까지 면면이 화려하다. 그중에서도 손 감독은 지금까지의 감독 선임 패턴을 벗어나 틀을 깬 시도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프로농구 감독은 주로 스타 선수 출신이거나 우승 경험이 있는 경력직이 맡았다. 때로는 학연·지연에 얽매이기도 했다. 손 감독은 건국대 출신 첫 프로농구 감독으로 1999년 2라운드 7순위로 안양 에스비에스(SBS)에 입단해 4시즌 동안 짧은 선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농구 전력분석원(2005~2015)을 거쳐, 2015년부터 안양 케이지시(KGC)인삼공사(현 정관장), 고양 캐롯(2022~2023), 소노(2023~2024) 코치를 역임하는 등 뒤에서 묵묵히 팀을 도운 지략가다.



구단 역시 그가 “전력분석 및 국제업무에 특화된 점”을 높이 샀다. 손 감독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팀에서 데이터를 밤새 분석할 것이다. 데이터는 바탕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각 선수의 체력, 심리 등 여러 상황에 맞게 잘 융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데이터에만 의존하면 선수에게 선입견이 생길 수 있어서 때론 데이터를 보지 않고 선수 자체에 집중하려고도 한다”고 했다.





손창환 프로농구 고양 소노 신임 감독이 21일 오후 고양 일산서구 고양소노아레나에서 한겨레신문과 인터뷰하기에 앞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손창환 프로농구 고양 소노 신임 감독이 21일 오후 고양 일산서구 고양소노아레나에서 한겨레신문과 인터뷰하기에 앞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김승기·김태술에 이은 소노의 세 번째 수장이지만, 사실상 ‘소노의 진짜 시작’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소노는 사연이 많은 팀이다. 1996년 창단한 고양 오리온스가 2022년 데이원스포츠에 인수·양도되어 고양 캐롯으로 재탄생했지만 모기업의 부실 운영으로 리그 이사회에서 제명당하고 해체됐다. 그때 갈 곳 잃은 선수들과 코치진들을 대명소노그룹이 인수해 2023년 7월 창단한 팀이 지금의 소노다. 캐롯과 상관없는 새 팀으로 출발했지만 다친 마음이 아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임금 체불 등 현실적인 문제를 넘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모두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당시 코치였던 손 감독은 며칠간 일용직을 뛰며 선수들에게 고기를 사주기도 했다. 잘못은 다른 사람들이 했는데 고통은 코트에서 열심히 뛴 이들이 떠안았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손 감독은 “뿔뿔이 흩어질 수 있었던, 이산가족이 될 뻔한 우리를 한집에서 살 수 있게 해준 소노 구단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그가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 중 하나도 “내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이 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이제 자산이 됐다. 오랫동안 선수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면서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 가능할 정도로 끈끈해졌다. “이 선수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 선수는 어떻게 둬야 공격이 극대화되는지” 등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다 안다’는 식의 자만과 방심을 경계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들을 잘 안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어요. 너무 잘 알면 제 머릿속에 그 선수를 가둘 수가 있죠. 그래서 선수들하고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려고 합니다.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다음 시즌 구상도 선수는 물론 많은 이들과 대화하면서 대주제에서 소주제로 좁혀가는 중이다. 소노는 도전과 혁신의 팀답게 공수에서 뻔한 공식을 탈피하고 싶어한다. 손 감독은 “특히 이재도-이정현-케빈 켐바오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소노의 지난 시즌 성적은 정규리그 8위였다.



선수 시절 “잘”은 못해도 “성실하게는 했다”는 그는 지금도 노트를 갖고 다니며 좋은 생각이 날 때마다 메모한다. 시즌 구상에 잠이 안 오면 새벽에라도 경기장에 나온다. 그의 노트와 심장과 머리를 빼곡하게 채운 생각들이 다음 시즌 코트에서 살아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소노는 많이 돌아왔어요. 저 역시 돌아가는 하나의 길이 될 수도 있지만, 제가 밤잠 안 자고 성실하게 움직이면 최대한 바른길로는 갈 수 있다고 믿어요.”



삼국지에는 지혜와 전략으로 1인자를 탁월한 리더로 만든 지략가들이 나온다. 한때 1인자의 성패를 좌우하는 통찰력과 섬김의 전략을 가진 2인자들의 지혜가 화두에 오르기도 했다. 20년간 2인자 리더십을 보여줬던 손 감독이 보여줄 리더십이 궁금해진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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