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구름많음 / 2.3 °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트럼프가 “美, 사기당해” 등 돌릴 때, 유럽은 똘똘 뭉쳤다

조선일보 파리=정철환 특파원
원문보기
균열 커지는 ‘대서양 동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뉴욕 주 웨스트포인트의 미국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뉴욕 주 웨스트포인트의 미국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지난 80여 년간 이념과 안보·경제에서 한 몸처럼 움직여 온 미국과 유럽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미국은 유럽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손해만 봤다며 등을 돌리고, 유럽은 미국의 이런 태도에 당황하면서도 ‘미국 없는 동맹’에 대비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모습이다.

유럽과의 안보·경제 협력을 ‘사기’와 ‘갈취’라고 지속적으로 끌어내려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군의 해외 파병을 ‘십자군 전쟁’에 비유하며 유럽을 또 한번 비난했다. 해외에서 대의명분을 앞세워 벌인 군사적 개입이 미국보다 유럽의 이익에 더 기여했다는 취지라는 해석마저 나온다.

그래픽=양진경

그래픽=양진경


트럼프는 24일 미 뉴욕주(州)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졸업식 연설에서 “최소한 지난 20년 동안 정치 지도자들은 우리 군대를 결코 수행해서는 안 될 임무로 끌고 갔다”며 “더 이상 우리와 아무 관계도 맺고 싶어 하지 않는 나라들을 재건하는 십자군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무역에서 세계 모든 나라에 사기를 당해왔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도 사기를 당했다”면서 “그 어떤 나라보다도 심하게 뜯겼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유럽 국가들이 방위비를 충분히 부담하지 않고 미국의 안보 지원에 무임승차하며 미국을 갈취하고 속였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이 유럽과 세계의 안보를 책임지는 동안 유럽이 마땅히 지불해야 할 안보 비용(방위비)은 줄이고 미국 상대로 무역 흑자를 내는 등 이중의 이득을 누렸다는 것이다. 이번 웨스트포인트 연설은 미군의 해외 파병도 마찬가지란 뜻을 ‘십자군 전쟁’이라는 표현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와 측근들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지원, 중동 홍해에서 서방 선박을 공격하는 예멘 무장 단체 후티 공습 등이 미국보다 유럽의 이해에 더 부합한다는 시각을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십자군 발언은) 트럼프의 고립주의적 정책의 연장선이자 유럽 동맹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트럼프는 전날에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일방적으로 유럽연합(EU)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협상은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따라서 2025년 6월 1일부터 EU에 50% 관세 부과를 권고한다”고 했다. 지난달 초 EU에 대해 발표했다가 현재 유예된 상호 관세율 20%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는 “EU는 무역 장벽과 환율 조작, 소송 남발로 미국을 손해 보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유럽 국가들은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는 트럼프의 행보에 직접적 대응은 삼가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중요한 동맹”이라며 관계를 먼저 깨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탈미(脫美)’에 대비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새로운 우군을 찾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고 해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커진 캐나다와 유럽이 정치적 연대를 복구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영국 찰스 3세 국왕은 오는 27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의회 개원식에 참석해 ‘왕좌의 연설(Speech from the throne)’을 할 예정이다. 영국 의회 개원식에서 국정 운영 방향을 밝히는 ‘킹스 스피치(King’s speech)’와 같은 성격의 연설이다. 캐나다는 영연방 소속의 입헌군주국으로 찰스 3세가 공식적인 국가 원수다. 보통 캐나다 총독이 그 역할을 대신해 왔는데, 이번엔 1977년 이후 48년 만에 영국 국왕이 직접 연설하기로 해 화제다.

더타임스 등 영국 매체들은 “영연방 결속의 상징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한편, 트럼프에게 맞서 캐나다를 대서양 반대편(유럽)으로 끌어들이려는 행보로 보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인구의 약 4분의 1이 프랑스계로,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캐나다는 국경을 접한 미국 못지않게 유럽과도 강한 정치·문화적 연계 의식을 갖고 있다. BBC는 “오히려 캐나다가 찰스 3세를 통해 미국에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유럽 내부의 결속도 강화되고 있다. 영국은 2020년 ‘브렉시트’(EU 탈퇴) 이후 5년 만에 EU와 다시 손을 잡았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9일 런던에서 만나 안보·경제·사회 등 전방위 분야에 걸친 협력 강화를 합의했다.

EU는 2030년까지 독자적 방위 역량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내용의 ‘대비 태세 2030’ 계획을 지난 3월 발표했다. 나토의 틀에서 벗어나 27개 EU 회원국 간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EU 주도로 군사 장비와 탄약을 공동 조달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군사력 증강,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불안정에 대비하겠다는 포석이다.

☞왕좌의 연설

영국과 영연방 국가의 의회 개원식에서 군주가 하는 연설. 본래 국왕이 통치 계획을 의회에 밝히는 자리였으나, 의회가 국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19세기 중반 이후엔 내각이 정부 정책 등에 대해 써준 내용을 국왕이 거의 그대로 읽는다. 영연방국에서는 보통 본국에서 임명된 총독이 영국 국왕을 대신해 읽는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

[파리=정철환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환단고기 논쟁
    환단고기 논쟁
  2. 2신유빈 임종훈 WTT 파이널스 우승
    신유빈 임종훈 WTT 파이널스 우승
  3. 3여진구 카투사 입대
    여진구 카투사 입대
  4. 4이성윤 최고위원 출마
    이성윤 최고위원 출마
  5. 5샌안토니오 NBA컵 결승
    샌안토니오 NBA컵 결승

조선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