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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탈북 시인 봉순이

조선일보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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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봄이었다. 통일부 산하 남북통합문화센터란 곳에서 전화가 왔다. 개관 3주년을 맞아 ‘탈북 시인 봉순이’란 분의 북 콘서트를 할 참인데 진행을 맡아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한 문예지의 편집주간으로서 ‘탈북인 문학’ 특집호를 낸 것을 알고 있었고 질문을 잘하리라 예상했던 모양이다. 5월 9일 강서구에 있는 그 센터에 갔는데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탈북인이었다.

행사 시작 1시간 전에 처음 본 시인은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본명은 밝힐 수 없고 사진 촬영 시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고 주최 측에서 말했다. 2003년 탈북하여 2005년 대한민국에 왔는데 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와서 다른 이들보다 고생을 적게 했다고 한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머니는 내가 아는 분이었다. 남한에 온 이후 자유북한방송 기자를 했고 국제PEN한국본부 망명북한센터 이사장으로 활동했단다. 경주에서 열린 세계한글작가대회에서 만난 분이기에 깜짝 놀랐다. 북 콘서트가 시작되자 방청석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등단 후 소설을 계속 발표하자 자극을 받아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남쪽에서 모녀 문인이 탄생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첫사랑’이란 시에 애인과 헤어지는 장면이 나와 사실이냐고 물어보았다. ‘널 마지막으로 만난 곳은/ 부둣가의 어느 작은 전봇대 아래/ 곧 탈북할 거라는 말을 꺼낼 수 없어/ 난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지.’ 사실이라고 했다.

‘탈북민의 거짓말’은 ‘괜찮다는 거짓말/ 잊었다는 거짓말’이 전문이다. ‘천국’은 ‘아버지 생신날/ 미역국 대신 아버지가 제일로 좋아하시던/ 청국장을 끓였다/ 한 술도 안 뜬 청국장은 그대로 있고/ 아버지만 없다’가 전문이다. 어부였던 아버지는 골목에서도 쓰러져 잠드는 술고래여서 모시고 올 수 없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살게 된 지 13년 되던 해에 고향의 고모가 쓴 편지를 받게 되었다고. 2018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였다. 고모의 편지에는 네 아버지가 네 이름만 부르다 돌아가셨으니 밥 한 그릇 떠 놓고 절이라도 올리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봉순이와 어머니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수 있을까.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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