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朝鮮칼럼] 대기업‘만’의 고임금 행보 멈춰야 한다

조선일보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
원문보기
한국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인데 대기업 임금 10만달러, 홀로 뜀박질
이 때문에 심해진 이중 구조로 원·하청 불신, 그냥쉼 청년, 저출산…

대기업 임금 인상 폭 줄인 돈으로 하청 단가 인상, 사회 안전망 강화
한 기업의 노력만으론 불가능… 기업 총수 결심과 한경협 협조를
10년 전부터였다. 당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이었다. 노동이 상층과 하층으로 분단된 상황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휩싸여 있었다. 각종 불평등 통계를 엮어 주변에 뿌렸다. 매일노동뉴스라는 노사정 전문 매체에 칼럼을 썼다. 대한민국 주력 노조 조합원은 소득 기준 상위 10%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지불 능력 있는 대기업 임금은 토끼뜀 뛰고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은 거북이걸음 해서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자꾸 심화하니까, 노동 간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기업별 임금 극대화 전략을 사회적 임금 조율 전략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코로나 위기 때는, 두 노총 조합원 임금을 동결하고 그 동결분으로 연대기금을 만들어, 소득 삭감 위기에 몰린 노조 바깥 비정규직·영세상인·하청노동·청년실업을 돕자고 했다.

노동계 술자리에서 간간이 오가기는 했으나,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엄두 내지 못한 얘기였다. 연 1억 받는 상층 노동자도 밑바닥이라는 관념이 팽배한 노동계였다. 노동 문제의 모든 책임은 경영계와 정부에 있다는 인식이 지배하는 노동계였다. 그랬는데 민주노총의 중심부 직책을 달고서 이중 구조 심화에 노동계 책임도 있다고 겁 없이 주장했다. 조직의 주요 직책을 걸고서 조직과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주장한다는 이유로 징계성 사과도 감수해야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 자본의 앞잡이라는 둥 보수로 변절했다는 둥 노동계 일각으로부터 줄기차게 욕먹고 있다.

이제는 경영계에도 욕 좀 먹으려 한다. 임금 극대화 전략은 노동계에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대기업 경영진도 기업별 고임금 정책을 구사한다. 그것을 충족하려고 하청 단가 후려치기라는 불공정 수단을 쓰기도 한다. 대기업 고임금 정책의 배경에는 노조 파업을 방지하고 필요 인력을 확보해서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

문제는 그 의도를 충족하는 상태를 훌쩍 넘겨버렸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인데, 대기업 임금은 7만·8만불에서 10만불 시대로 저 홀로 뜀박질하고 있다. 20만불까지 치고 올라갈 기세다. 노동소득분배율이 80%인 중소기업은 3만불 시대의 임금을 맞추는 것도 버거운 상태다. 그 때문에 심화하는 이중 구조는 원·하청 불신, 그냥 쉼 청년, 저출산, 중소기업 인력난 등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 이어졌다. 또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인상 욕구를 자꾸만 부채질해서, 현대차 계열사 및 삼성전자 등의 임금·성과급 갈등 사례에서 보듯 경영에 크게 부담되는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

경영계는 대기업‘만’의 일률적 고임금 정책을 그만 멈춰야 한다. 대기업 임금을 아예 올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또 몇억·몇십억을 줘서라도 붙들어야 하는 특출한 인력은 예외로 하는 얘기다. 주장의 요지는 대기업 임금 인상 폭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래도 대기업이 두 배 이상 받는다. 대기업 고임금 정책의 축소로 남는 초과 이윤은 하청 단가를 높여 중소기업의 생산성 및 임금 향상에 사용하고, 사회로 돌려 사회 안전망 강화에 쓰도록 해야 한다. 한 기업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어떤 대기업이 임금을 대폭 올리면 다른 대기업도 따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재벌을 중심으로 공통 기준을 세우고 사회적으로 조율해야 한다. 일본은 임금의 사회적 조율을 경영자 단체 게이단렌(經團連)이 주도한다. 유럽은 노조 상급 단체와 경영자 단체가 협력해서 주도한다. 우리는 한경협(구 전경련)이나 경총에 역할을 부여하면 된다. 물론 대기업 고임금 정책은 경영 전략이라서, 총수가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생각할 때 이 세상에서 시 문학적 능력을 가장 많이 보유한 것 중 하나가 구구단입니다. (…) 정신적, 도덕적 자본을 해마다 일정한 비율로 늘릴 수 있다면, 발전은 무한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 도덕적 자본에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 작은 씨앗은 마치 구구단을 적용한 듯 무한하게 큰 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경제학 교과서의 표준 ‘경제학 원리’의 저자로 미시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피도 눈물도 없던 자본에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숨결을 불어넣어 자본주의 진화 발전에 혁혁하게 공헌한 앨프리드 마셜의 말이다. 대한민국 경영계에 던지는 메시지 아닐까 싶다. 대기업 총수들과 경영계의 인식 전환을 기대한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5분 칼럼' 구독하기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유철환 권익위원장 면직
    유철환 권익위원장 면직
  2. 2쿠팡 국정원 위증 논란
    쿠팡 국정원 위증 논란
  3. 3김병기 원내대표 사퇴
    김병기 원내대표 사퇴
  4. 4힉스 39점
    힉스 39점
  5. 5이강인 PSG
    이강인 PSG

조선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