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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신광영]하루 10통 항의 전화에 시달렸던 ‘제주 교사’

동아일보 신광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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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제주의 한 중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교사는 사흘 전 제자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OO아, 항상 네 편에 누님이 있다는 거 잊지 말고, 담임 입장에선 학교 열심히 나왔으면 좋겠다. 담배 못 끊겠으면 줄였으면 좋겠다. 잘 자고 내일 보자.’ 중3 담임이던 이 교사는 제자가 결석을 반복하고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자 정학을 막아 보려 병원 진단서를 가져오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두 달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는 끝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사건의 발단은 교사가 올 3월 초 “왜 학교에 나오지 않느냐”며 제자를 혼내면서부터다. 학생의 가족은 이때 폭언이 있었다며 교육청에 아동학대 취지로 민원을 냈다. 유족에 따르면 학생 가족으로부터 고인의 휴대전화로 항의 전화가 많이 왔고, 하루 10통 이상 온 날도 있었다고 한다. “남편은 그런 전화가 올 때면 나가서 받았다”고도 했다. 사망 전날에도 그 제자에게 ‘아프면 병원 들러서 학교 오세요’라고 문자를 남겼던 교사는 가족과 제자한테 미안하단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교사의 분향소에는 졸업생들이 많이 찾아왔다. 한 제자는 “엇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잡아주시고, 남아서 공부하고 있으면 짜장면 사주시던 선생님”이라고 했다.

▷‘교사 괴롭힘’은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에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학부모가 자녀의 담임 교사 앞으로 “(당신의) 딸에게 별일 없길 바란다면 편지는 끝까지 읽는 게 좋을 것”이란 문구로 시작하는 협박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자녀가 모르는 문제를 칠판에 풀게 해 망신을 줬다면서 교사를 고소한 일도 있다. 전북의 한 초등학교에선 학부모 2명이 10회가 넘는 민형사 소송을 내 담임이 6번이나 교체되기도 했다.

▷교사가 악성 민원에 노출되지 않도록 학교에 민원 대응팀을 두는 등 ‘교권 보호 4법’이 지난해 시행되긴 했다. 하지만 학교 측이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고, 문제 학생에 대한 제재도 거의 없어 교사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 괴롭힘을 당한 선생님들은 스스로 교사 자질이 있는지 자책하면서 위축되는 경향이 있어 외부에 알리는 걸 힘들어한다. 이번에 숨진 제주 40대 교사 역시 학교와 집에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민원이 없는 완벽한 교사다’란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초임 교사일 땐 잘못한 제자들을 혼내다가 민원이 많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학부모 상담 때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주고, 학생들이 딴짓해도 내버려둔 덕분이란 내용이다. 요즘 교사 5명 중 3명이 사직을 고민하고, 교대 합격선이 하락하는 건 이런 무기력감의 여파일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해야 좋은 교사로 평가받는 교실에선 배울 기회를 잃어버리는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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