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어제보다 어둡다 그것은 골목 초입의 빨래방이 어제보다 어두운 탓이다 빨래방이 어제보다 어두운 것은 한 사람이 빨래방에 있어서다 그 사람의 앉은키만큼 노란빛이 사라져서다 통유리창 너머로 그 사람의 등을 오래 쳐다본다 그 사람의 등으로 가서 등의 중심으로 가서 나는 백열등을 하나 켤 수도 있으리라 백열등 아래 어항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리라 거기서 인두겁을 벗고 부드러운 비늘을 드러낼 수도 있으리라 나는 밤물결을 누비는 인어가 된다 목소리를 잃는 대신 한 사람이 된다 그 사람이다 빨래방에 앉아 있다 그러한 과거를 떠올리면서 장이지(1976~)
시인은 지금 골목 초입 빨래방에 서 있다. 빨래방은 오늘 어둡다. “빨래방이 어두운 것은” 한 사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빨래방에 앉아서 세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그 사람의 등”을 오래 쳐다본다. 그에게 다가가 백열등을 켠다.
불을 켜는 순간, 백열등 아래로 어항이 생겨난다. 어항 속에서 밤바다가 펼쳐진다. 어디선가 나타난 인어는 그 부드러운 비늘로 어두운 밤의 물결과 파도를 헤쳐나간다. 시인은 인어의 물속 그림자를 쫓아가며 사람들의 고단한 등에 대해 생각한다.
빨래방은 지금 어두운 밤바다이다. 세탁기 속에서 우리들의 껍데기 같은 옷들, 그 옷에 묻은 어제의 절망들이 서로 뒤엉키며 씻겨 나간다. 파도와 물거품이 된 어제의 말들도 씻겨 나간다. 시인은 “인어가 되”었다가 그 “한 사람이 된”다. 골목을 헤엄치듯 휘돌아 나간다. 골목의 어둠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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