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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축’ ‘쇠퇴’ 시대를 응시하며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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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일본 정부의 비축미가 사이타마현의 한 정미소로 옮겨지고 있다. 교도통신 연합뉴스

지난 3월 일본 정부의 비축미가 사이타마현의 한 정미소로 옮겨지고 있다. 교도통신 연합뉴스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현재 일본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쌀값이다. 1년 만에 쌀값이 갑절이 된 것은 대부분 일본인이 처음 겪는 일이다. 정부가 비축미를 방출했지만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1960년대 후반 쌀이 과잉 생산되자 정부는 감산 정책에 나섰다. 농업 종사자가 줄었고, 평균 나이는 69살로 높아졌다. 앞으로 쌀값이 올라도 농가에 쌀 생산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일본이 경제 대국을 자부하던 사이 쌀 자급 능력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2차 대전 뒤 일본을 지탱해온 제조업에서도 어두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파나소닉은 1만명 감원을 발표했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닛산자동차의 2만명 감원과 공장 7곳 폐쇄 검토 관련 보도도 나왔다. 내 인생 전반부는 고도 성장 속에서 석유 파동 위기를 극복하며 일본이 ‘세계 넘버원’이라고 불리던 시대였는데, 인생 끝자락에 가까워져 ‘몰락’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일본 정부와 경제계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고관세 정책으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일본에선 “자동차 산업만 돈벌이가 된다”고 하는데, 미국에 차를 팔 수 없으면 어떻게 될지 불안이 크다. 탄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쇠퇴 국면의 생존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자원이 부족한 일본은 식량과 원료를 수입하고, 공업 제품을 수출해 생존해왔다. 수출 경쟁력이 낮아지면 식품과 에너지의 자급률을 올려 해외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에너지 면에서는 화석연료 수입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게 시급하다. 유럽에는 2023년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이 전체 전력의 50%를 넘는 국가가 여럿 있다. 반면 일본은 24%다. 일본도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원전 의존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원전 회귀에 나서고 있다. 안전 대책이나 사용후핵연료 처리 비용 등을 고려하면 원전이 저렴하다는 것은 표면적 이야기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농업 분야에서는 지난 10여년간 정부가 희귀 과일이나 고급 쇠고기 수출을 장려해 농가 수익을 높이는 방식을 추진해왔다. 수익 창출이 가능한 농가가 돈을 버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농업의 기본은 국민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다. 농기계나 비료 가격 상승을 고려하면 쌀값이 오르더라도 농가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유럽 국가들처럼 농가 보호 정책을 도입해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드는 게 시급한 과제다.



첨단 공업 제품을 수출해 수익을 내는 방식에서 식량·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고 내수 주도 경제 모델로 전환하는 것은 국가의 모습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대도시 집중은 저출생과 인구 감소를 가속화한다. 수도권은 주택 가격도 높아 젊은 층이 가정을 이루기도 어렵다. 정보산업과 금융 등으로 부를 창출하겠다는 목적이라면 대도시 집중은 합리적 국토 설계다. 그러나 이런 모델은 젊은 세대를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 수축을 빚어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일본은 한국과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난 19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에서 인구의 절반가량이 서울 권역에 집중돼 있으며 젊은 세대가 서울의 대학을 목표로 치열한 경쟁을 하는 모습을 소개했다.



일본과 한국은 나란히 첨단산업으로 발전하는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한 합리적 수단으로 수도권 집중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인구 감소와 장기적 사회 소멸 위기를 맞은 지금 다양한 ‘합리성’의 축을 가져야 한다. 한 국가 안에 여러 지역과 산업의 존재를 통해 사회가 유지된다는 점을 목표로 하는 게 필요하다. 이웃 나라인 한-일 간 협력도 가능할 것이다. 6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와 7월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 구상이 논의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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