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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접촉해온 하팍로이드...K조선 '기회의 돛'과 '좌초 위기' 사이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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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홍 기자] "중국산 선박이 미국 항만에 들어오려면 150만 달러(약 20억 원)를 내야 한다. 중국 조선소에 배를 새로 주문하는 선사도 100만 달러의 추가 수수료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과 함께 구체화되고 있는 미국의 초강력 대중(對中) 조선업 규제안의 일부다.

전미철강노조(USW) 등 5개 노조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고발하며 시작된 미 무역대표부(USTR)의 조사는 중국 정부가 자국 조선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퍼부어 글로벌 시장을 왜곡했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며, 그 결과 중국 선박에 대한 징벌적 항만 이용료 부과, 심지어 미국 항만 내 중국산 크레인 사용료까지 물리는 방안이 2025년 10월부터 단계적 시행을 앞두고 있다.

미국의 파상공세는 단순히 중국 조선업을 견제하는 것을 넘어 자국 조선업 부흥을 통한 해양 패권 장악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야심 찬 밑그림의 일환이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으나 현재 군함 건조 명맥만 유지 중인 미국 조선업은 최근 미 해군의 신형 군함 건조 프로그램 9개에서 최대 3년의 지연이 발생하는 등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반면 중국은 2030년 425척의 함대를 구축할 전망이어서 미국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그 연장선에서 K조선의 미래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MRO·첨단선박 '기회의 바다' 열리나

미국의 최근 움직임은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한국 조선업계에 전에 없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저가 수주 전략으로 물량 공세를 펼치는 중국에 선박 수주 1위 자리를 내줬던 한국이 다시금 선두를 탈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피어오르는 중이다.

가장 직접적인 신호는 글로벌 선사들의 '탈(脫)중국' 움직임이다. 미국의 중국 압박에 K조선에 손을 내미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해운 전문지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세계 5위 컨테이너 선사인 독일 하팍로이드는 최근 LNG 추진 이중연료 컨테이너선 옵션(추가) 물량 발주처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팍로이드는 건조 경험이 있는 중국 뉴타임즈조선(1만2500TEU급 12척)과 양쯔장조선(1만6000TEU급 6~8척)에 추가 발주를 검토했으나, USTR의 대중국 제재 발표 이후 한화오션, HD한국조선해양 등 한국 업체들로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선박에 큰 문제가 없음에도 옵션 물량 발주처를 바꾸는 것은 업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한국 조선업체들이 한 척당 최대 3500만 달러(약 480억 원)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하팍로이드는 다시 중국 측과 접촉하는 등 최종 결정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2년이 넘는 수주잔고를 보유해 저가 수주에 나설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 벌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한국행을 먼저 검토했다는 것은 선사들이 미국의 중국 견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세계 6위 컨테이너 선사인 일본 ONE 역시 최근 약 25 달러(3조4000억원) 규모의 대형 컨테이너선 12척 건조 계약을 HD현대중공업과 마무리 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만 6000TEU급 이중연료 컨테이너선 8척에 대한 계약이 확정적이며, 4척의 옵션 계약도 논의 중이다. 척당 가격은 2억2000만달러(약 3010억원)에 달한다. 트레이드윈즈는 "미국이 중국산 선박에 부과할 입항 수수료 등이 선사들을 중국에서 한국으로 발길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과거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높았던 컨테이너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미국의 중국 견제로 한국 업체들이 컨테이너선 시장에서도 수주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시장도 여전히 매력적인 기회다. 연간 2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이 시장에 한화오션이 미 해군 군수지원함 정비 계약을 따낸 것은 긍정적인 신호탄이다. 향후 부품 공급, 설계 지원 등으로 협력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 우선주의' 그림자… 고비용·기술유출 '암초'

K조선의 앞길에 장밋빛 전망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냉엄한 현실도 존재한다.

최근의 훈풍 동력 중 하나인 미국과의 동행, 그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의 궁극적 목표가 당연하지만 '자국 조선업 부활'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당장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 조선소의 경우, 노후 도크 개선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인건비 등 현지 생산 비용이 한국의 3배에 달해 수익성 확보가 만만치 않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깃발 아래 한국 기업들은 고비용 구조와 함께 핵심 기술 이전 요구, 지식재산권 분쟁 가능성이라는 암초를 만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미중 갈등의 격화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선에 동참하는 모양새로 비칠 경우 중국의 경제 보복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과거 사드(THAAD) 사태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 조선 기자재 업체들의 동반 미국 진출이 어려워지거나 국내 일감이 줄어들어 'K-조선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간과할 수 없다.

글로벌 조선 시장의 단기적 위축 가능성도 변수다. 클락슨리서치는 2025년 신조선 발주량이 2024년 대비 약 30%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 강화(2027년 탄소세 부과 등)는 장기적으로 친환경 선박 수요를 폭발시켜 한국 조선업에는 구조적인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국 조선업의 미래는 미국의 정책 변화라는 파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전문가들은 △LNG를 넘어 암모니아·수소 연료 추진선, 선상 탄소 포집 기술 등 '초격차 기술' 확보 △미국 MRO 시장 선점 및 현지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 △유럽·인도 등 신흥 시장 개척을 통한 시장 다변화 △정부 차원의 외교적 지원 및 R&D 투자 확대를 핵심 생존 전략으로 꼽는다.

사실 미국의 의도는 명확하다. 자국 조선업 재건에 한국의 기술력을 활용하되, 주도권은 미국이 갖겠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미국 시장 진출의 기회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한국의 기술과 수익성을 지키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편승하기보다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균형 외교'와 함께,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술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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