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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형 선고' 이란 반체제 감독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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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르 파나히 감독 '그것은 단지 사고였다'
2010년 반정부 혐의 등으로 6년 형
이란 정부 탄압 속 꾸준히 영화 만들어
역대 네 번째 3대 영화제 최고상 수상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24일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24일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리 나라이고, 우리 나라의 자유입니다. 힘을 합쳐요. 누구도 우리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선글라스를 낀 노년 남자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트로피를 받은 후 그는 “국내외 이란인들이 모든 차이와 문제를 제쳐 두고 힘을 합치자”고 했다. 지난 24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8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의 주인공은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65)였다. 그는 영화 ‘그것은 단지 사고였다’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안았다.

파나히 감독은 이번 수상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받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파나히 감독은 ‘서클’(2000)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택시’(2015)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트리플 크라운’ 달성은 프랑스 감독 앙리 조르주 클루조(1907~1977), 이탈리아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1912~2007), 미국 감독 로버트 앨트먼(1925~2006)에 이어 역대 네 번째 기록이다.

파나히 감독은 이란의 대표적인 반체제 영화인이다.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신인상에 해당)을 수상한 데뷔작 ‘하얀 풍선’(1995)부터 비판적 시선으로 이란 사회를 꾸준히 그려 왔다. 그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에 이어 ‘오프사이드’(2006)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 감독으로 부상했으나 이란 정부는 그를 요주의 인물로 주목했다. 2010년부터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됐다. 파나히 감독은 반정부 시위 조장과 반정부 선전물 제작 혐의로 6년 형과 더불어 20년 활동 정지 선고를 받았다. 치료나 성지 방문 목적 이외 해외 출국이 금지되기도 했다. 파나히 감독의 이번 칸영화제 참석은 2010년 이후 첫 해외 영화제 방문이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24일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경쟁 부문 심사위원인 호주 배우 케이트 블란쳇(왼쪽)과 심사위원장인 프랑스 배우 줄리엣 비노시와 함께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24일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경쟁 부문 심사위원인 호주 배우 케이트 블란쳇(왼쪽)과 심사위원장인 프랑스 배우 줄리엣 비노시와 함께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파나히 감독은 국내외 모든 영화 활동이 금지됐으나 영화를 계속 연출했다. 가택연금 상태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2011)는 파일이 이란 당국 몰래 반출돼 칸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세계 영화인들의 구명 운동이 이어졌고 파나히 감독의 주요 영화제 수상 릴레이는 계속됐다. 그는 ’닫힌 커튼’(2013)으로 베를린영화제 각본상을, ‘3개의 얼굴들’(2018)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노 베어스’(2022)로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가택연금과 체포, 투옥이 반복되기도 했다. 파나히 감독은 2022년 동료 감독과 체포돼 투옥됐다가 단식 투쟁을 거쳐 2023년 보석으로 석방됐다.

황금종려상 수상작 ‘그것은 단지 사고였다’ 역시 이란 사회를 겨냥한다. 수형 생활을 한 남자 5명이 자신들을 고문했다고 여겨지는 남자를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5명이 납치한 이를 죽여야 할지를 두고 갈등하면서 긴장감이 조성된다. 파나히 감독이 “교도소에서 만난 수형자들과 대화하며 만들어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인 프랑스 배우 줄리엣 비노시는 “영화와 예술은 도발적이면서도 어둠을 용서와 희망과 새 삶으로 전환시켜줘야 한다”며 “‘그것은 단지 사고였다’를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이유”라고 밝혔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억압적 체제를 조준한, 분노에 차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스릴러”라고 평가했다.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2등상)은 덴마크 출신 노르웨이 감독 요아킴 트리에르의 '센티멘털 밸류'가 받았다. 심사위원상은 스페인·프랑스 영화 ‘시라트'(감독 올리비에 라시)와 독일 영화 '사운드 오브 폴링’(감독 마샤 실린슈키)이 공동 수상했다. 브라질 스릴러 '비밀요원'은 감독상(클레베르 멘돈사 필류)과 남자배우상(와그너 모라)을 차지했다. 여자배우상은 ‘여동생’의 프랑스 배우 나디아 멜리티가 받았다. 알제리계 프랑스 가정의 17세 소녀가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다. 벨기에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뤼크 다르덴이 ‘젊은 어머니의 집’으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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