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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지금, 이 문장’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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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된 박상륭 선생의 장편소설 ‘죽음의 한 연구’ 두번째 문장이다.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읽어내기가 말 그대로 용이치 않았기 때문. 보기도 전에 두께에 이미 질렸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그러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이 소설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 “어떤 존재는 동녘 운산, 북녘 눈뫼, 서녘 비골 대신 갈증이 계속되는,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 모인다”는 첫 문장에 정신이 휘청거렸고 뒤에 나오는 이 문장에서는 완전히 영혼이 털려버렸다.



3인실에 있었고 내 옆 환자가 말기 암 노인이었는데, 툭하면 아들과 딸들이 시간차를 두고 찾아와, 얼른 재산 물려달라고 윽박질러 대서 몹시도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통에 책 제목을 손으로 가리고 읽어나가야 했다.



그러니까 가슴에 불을 지핀 주인공이 유리로 가서 40일간 자신의 죽음을 완성시킨다는 것. 그리고 그는 선종의 6조 혜능(慧能)이자 예수라서 한마디로 모든 종교를 망라한, 샤머니즘의 체계화로 볼 수 있는데 다만 한가지, 이 책을 힘들어하는 이들을 여럿 보았다.



내 나름의 조언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지 말고, 눈이 가는 대목 이를테면 주인공과 수도부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처럼, 읽어지는 부분만 읽고 덮었다가 다음에 다시 읽으며 앞뒤로 두어 문장씩 영역을 넓혀가보라는 것인데 직접 선생께 여쭤본 적이 있다. 그러자 선생께서 두 손 번쩍 들며 만세! 하신 것으로 보아, 괜찮은 방식 같아서 덧붙인다.







소설가 한창훈 l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고 1998년 장편 ‘홍합’으로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단편집 ‘가던 새 본다’ ‘나는 여기가 좋다’ 등과 장편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꽃의 나라’ 등을 냈다. 요산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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