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과 정상회담 중 남아공의 백인 농부 학살 증거라며 관련 영상을 재생하고 있다./UPI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백악관에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중 “남아공에서 백인 농부들이 학살당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보여준 영상이 남아공이 아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촬영된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가 튼 영상에는 벌판에 십자가들이 늘어선 모습의 ‘백인 농부들의 무덤’이 삽입돼 있었는데, 남아공과 전혀 상관없는 장면을 짜깁기한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22일 로이터는 “해당 화면은 로이터 뉴스 영상 화면이며, 팩트 체크해본 결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촬영된 것으로 남아공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영상은 2023년 2월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도시 고마에서 촬영됐다. 르완다 지원을 받는 반군 ‘M23’의 공격 이후 시신을 수습하는 인도주의 단체들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남아공과는 관련이 없는 장면이다.
트럼프가 튼 영상에는 남아공의 흑인 급진 좌파 정치인 줄리어스 말레마가 수만 명이 운집한 집회에서 “‘보어인(네덜란드 이주민)을 죽이고 농장주들을 죽이자”는 장면이 나온 뒤, 로이터 영상이 이어진다. 트럼프는 “이건 모두 남아공에서 매장되고 있는 백인 농부들”이라고 주장했는데 아무 관련이 없었다. 로이터는 “남아공의 백인 농부 학살 음모론은 극우 채팅방에서 수년간 확산돼 왔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된 것”이라고 했다.
해당 영상을 촬영한 로이터 영상기자 자파르 알 카탄티는 “그날 고마 현장에 접근하기 위해 반군 M23과 협상하고 적십자(ICRC)와 조율해 간신히 촬영한 영상인데, 트럼프가 이를 남아공의 인종 학살 증거로 사용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미국 대통령이 내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찍은 영상을 남아공의 ‘백인 학살’ 증거로 왜곡했다”고 했다.
라마포사 역시 백악관에서 트럼프가 “남아공의 백인 농부들 무덤”이라고 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저게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촬영됐나”라고 반문했다. 트럼프는 이에 “남아공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했다. 남아공 정부는 이번 사건 이후 별도 성명을 내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들은 라마포사가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이후 참모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5월 21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회담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남아공의 백인 농부 학살 증거라고 주장한 영상을 재생하고 있다./AP 연합뉴스 |
이 사태는 이날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다시 불거졌다. NBC 기자는 “대통령이 1000명 이상의 백인 남아공인이 살해되어 묻힌 매장지를 보여주는 영상이라며 영상을 재생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고, 그 영상도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이 거짓 주장을 기반으로 세계 정상 앞에서 생중계한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그 영상은 백인 농부들이 인종 박해로 희생된 것을 상징하는 십자가들을 보여준 것”이라고 반박했고, NBC 기자는 “대통령은 그곳이 (상징이 아니라) 실제 매장지라며, 시신이 묻혀 있는 장소라고 말했다. 영상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무엇보다 백악관은 이런 영상이 어떤 절차로 검증되는지, 왜 그런 자료가 세계 정상 앞에서 검토 없이 보여졌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레빗 대변인은 “그 영상의 무엇이 근거 없다는 거냐”며 “그 영상은 정부로부터 인종적으로 박해받아 사망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십자가들을 보여준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This is a very serious situation. If we had a real press, it would be exposed. When it gets exposed, it'll get fixed. But people don't talk about it. And I'll tell you who is talking about it, thousands of people that are fleeing South Africa right now." –President Trump pic.twitter.com/Cu3Or9Mar0
— The White House (@WhiteHouse) May 21, 2025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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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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