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
|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초등학생 때는 눈에 띄지 않다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된 후 성적이 빠르게 오르며 원하는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꾸준히 책을 읽고 생각하며 글쓰기를 해왔다는 것. 비결이라기엔 너무 평범해 보이지만 독서 습관을 기르는 건 쉽지 않다. 초등학교 3, 4학년만 되어도 영어, 수학 공부를 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초체력이 튼튼해야 운동을 잘 할 수 있듯이 독서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공부도 잘 할 수 있다.
26년째 독서 교육을 해온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48)의 말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자리한 논술화랑은 1년 넘게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 김 대표는 중고등학생 때 두각을 내는 학생들과 어린 시절엔 주목받았지만 중고등학생이 된 후 고전하는 학생들을 숱하게 봤다. 이를 가른 차이는 독서였다. 김 대표는 나이대별 독서 교육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성적 초격차를 만드는 독서력 수업’(빅피시)을 올해 3월 출간했다. 책은 나온 지 두 달 만에 2만 권이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독자들은 “아이 교육에 대한 고민이 일순간 해소된 느낌이다”, “이렇게 명쾌한 해답을 주는 책은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는 리뷰를 남겼다.
‘성적 초격차를 만드는 독서력 수업’을 쓴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 빅피시 제공 |
김 대표를 서울 강남구 논술화랑에서 19일 만났다. 책을 출간한 빅피시 출판사의 박지숙 이사는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이 책은 김 대표가 쓴 첫 책이다. 여러 출판사로부터 집필 제안을 받아왔지만 오랜 시간 망설였다고 한다. 그는 “연구하고 가르친 바를 책으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논술화랑을 운영하고 대학원 공부를 하느라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김 대표는 고려대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빅피시는 지난해 4월 김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본 후 출간 제안서를 보냈다.
“교육열이 가장 높은 대치동에서 제일 인기 있는 독서논술 학원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대치동 같이 성적으로 바로 성과를 내야 하는 곳에서 독서 교육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더구나 국어 내신 관리가 아니라 제대로 읽고 생각하는 독서 교육을 한다는 데서 더욱 호기심이 생겼고요.”(박 이사)
김 대표는 책 목차까지 담은 제안서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논술화랑은 광고를 한 적이 없어서 알려진 정보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논술화랑에 대해 최대한 알아보고 목차를 정리한데다 ‘많이 바쁘시겠지만 책을 끝낼 수 있게 도움을 드리겠다’고 해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10년 가량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치 이를 알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김 대표)
김 대표는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책을 읽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열 살도 안 된 아이에게 문제를 풀고 단어를 외우게 하는 건 금물이다. 저학년 때는 책을 여러 번 정독하고 자유롭게 생각해 본 후 이를 글로 써보게 하라고 당부한다. 글은 첨삭하지 말고 잘한 부분을 칭찬해 주는 게 좋다고 말한다. 연령별로 추천하는 그림책, 동화, 고전소설, 비문학, 장르소설 등의 목록과 함께 글쓰기를 막막해하는 아이가 활용할 수 있도록 문장 예시를 포함한 글쓰기 양식도 담았다.
학부모들에게는 저학년인데도 지식을 얻고 생각하는 능력이 뛰어난 이른바 ‘유니콘 아이’를 봐도 불안해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이 태어난 지 3일 만에 걸어 다니고 활을 쐈다는 신화를 언급하며 유니콘 아이 얘기를 들으면 “그 집 아이는 건국을 하려나 보다”라고 쿨하게 생각하라고 말한다.
‘성적 초격차를 만드는 독서력 수업’ 책표지. 빅피시 제공 |
책을 만드는 데는 8개월 넘게 걸렸다. 김 대표는 “며칠간 씻지도 않은 채 ‘폐인 모드’로 살며 넉 달 가량 초고를 썼다”며 웃었다. 박 이사는 “첫 책인데도 쉽고 흥미롭게 쓰셔서 문장을 별로 고칠 게 없었다”고 했다.
다만 원고 분량이 많아 이를 줄이는 게 만만치 않았다. 수정 원고가 수없이 오갔고 결국 토론과 발표를 다룬 내용은 덜어냈다.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도대체 몇 번째 바꾸는 거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웃음) 출판사에선 제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주셨어요. 오랜 시간 교재를 만들다보니 글씨 모양과 디자인 등에 대한 저만의 기준이 있거든요. 소제목 크기와 색깔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하다 박 이사님에게 혼났어요.(웃음) 이사님이 ‘작가에게 창작권이 있는 것처럼 출판사에는 편집권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희를 믿고 존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고 정중하게 말씀하셨어요. 아차, 했죠. 책을 만드는 데는 그분들이 전문가니까요. ”(김 대표)
제목을 정할 때도 진통이 이어졌다. 제목에 ‘국어’, ‘문해력’이 들어간 책들이 많아 두 단어는 제외했다. ‘독서력’이란 단어는 김 대표가 만들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성적’, ‘초등’이라는 단어를 원치 않았지만 출판사에서는 타깃 독자층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에 ‘성적’은 큰 제목에, ‘초등’은 부제목에 각각 넣었다. 이렇게 해서 ‘성적 초격차를 만드는 독서력 수업: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공부머리, 초등에서 완성하라’가 나온 것.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고 입소문이 나면서 빠르게 판매됐다. 김 대표는 “책에 대한 애착이 크신 부모님이 매우 기뻐하셨다”고 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김 대표가 독서 교육에 몸담게 된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대학 총학생회 부회장을 지낸 아버지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후 강원도 탄광으로 가 광부가 되셨어요. 탄광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탄광 안전에 대해 삽화를 넣어 쓴 책 20권을 회사에 전했습니다. 하지만 석탄 산업이 내리막길로 접어든 때였죠. 이후 서울 영등포에 ‘시민서림’이라는 작은 서점을 열었습니다. 아버지는 ‘지식은 사회에 진 빚이기에 지식을 가진 사람은 사회와 나누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김 대표는 초등학생 때부터 서점에서 여러 책을 마음껏 읽었다. 중학생 때는 만화책에 푹 빠져 부모님 몰래 만화방에 가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고전에 매료됐다.
“아버지가 1997년 ‘독서문화연구원’을 세워 독서 교육을 시작했어요. 당시 제가 대학생이어서 이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죠. 처음엔 복사를 하다 교재 만들기, 광고, 재무까지 점점 업무가 늘었어요. 연구부에서도 일했고요. 두 오빠는 이 일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 때까지만 해도 김 대표는 이 일을 계속 할지 몰랐다고 한다. 회사는 5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지만 이후 점점 기울었고 운영이 어려워졌다. 결국 2005년 김 대표가 회사를 인수하게 됐다. 김 대표는 당시 ‘글쓰기 스타 강사’로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방배동 지하창고를 얻어 ‘독서문화연구원’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제가 과외 수업을 해서 번 돈으로 직원들 월급을 줬고요. ‘논술화랑’이라는 이름도 지었습니다.”
강연하는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 김수미 대표 제공 |
그는 쓰러진 회사를 20대에 다시 일으키며 온갖 풍파를 겪었다. 새로 출간된 그림책, 동화책은 모두 보며 교육안을 만들었다. 250페이지 가량의 동화책을 매일 7, 8권씩 읽기도 했다.
“하루 1, 2시간 쪽잠 자면서 일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있으면 책에서 답을 얻었습니다. 모든 길을 열어줬던 건 항상 책이었고, 고비고비마다 책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책을 통해 받았던 혜택을 책으로 돌려주고 싶습니다.”
■ ‘성적 초격차를 만드는 독서력 수업’(빅피시·2025년)은….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가 연령대별 독서 교육 방법을 정리했다. 그는 중고등학교에서 돋보이는 성과를 내는 학생들은 꾸준히 책을 읽고 자유롭게 생각하며 글쓰기를 해 왔다고 말한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 맞는 책을 읽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유아기 때는 부모가 책을 읽어주며 아이가 독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 아이가 한글을 익혔다고 해서 곧바로 혼자 책을 읽게 하는 건 지양하라고 말한다. 부모가 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혼자 읽는 것을 병행하는 시기를 3~4년쯤 갖는 게 좋다. 자동차운전면허를 땄다고 해서 곧장 홀로 운전하는 게 가능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정확하게 읽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쉬운 책을 반복해 읽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장르를 계속 읽는 것이 좋다. 정독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한 책을 9번 정도 읽은 후 그 내용을 자신의 경험 등과 연결해보고, 생각과 느낌을 글로 써 보는 게 좋다.
정독 습관이 자리 잡으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한다. 독서 습관이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 2~3년 정도 아이가 매일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해 줄 필요가 있다.
아이가 책 읽기를 싫어한다면 휴대전화, TV, 게임기 등 책보다 더 재미있어하는 건 치워야 한다. 책 내용이 아이에게 어려운 건 아닌지도 확인해야 한다.
나이별로 읽으면 좋은 그림책, 동화, 고전문학, 비문학, 장르소설 목록도 담았다.
글쓰기는 꼭 필요하다. 글쓰기를 막막해할 경우 아이가 말하는 대로 쓰게 하고 칭찬해 줘 자신감을 갖게 만든다. 비문이거나 맞춤법이 틀려도 바로 지적하기보다는 계속 써보게 하는 게 중요하다. 첫 문장부터 쓰기 어려워하는 아이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건~’, ‘내가 잘하는 건~’, ‘~에서 있었던 일이다’처럼 첫 문장 예시를 알려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으면 점점 길게 쓸 수 있다. 그러면 서론, 본론, 결론으로 개요를 짜서 써보게 한다. 서론은 경험이나, 질문, 인용 등으로 시작할 수 있다. 본론에는 인상적인 장면 혹은 줄거리, 자기 생각, 예시 등을 쓸 수 있다. 결론은 앞선 내용을 정리하거나, 주장 강조하기, 해결방법 제시하기 등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독서를 수행 평가, 진로 탐색, 생활기록부 관리 등 중학교 생활과 연계해 활용하는 방법도 담았다.
김 대표는 “아이의 나이에 맞는 난도의 책을 재밌게 읽는다면 문해력은 잘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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