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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976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엇갈린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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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 베티 윌리엄스- 1

북아일랜드 '평화의 공동체'를 설립, 영국과의 평화 공존 운동을 이끈 베티 윌리엄스(왼쪽 두 번째)와 머레이드 코리건(세 번째)의 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 전 모습. herstory.ie

북아일랜드 '평화의 공동체'를 설립, 영국과의 평화 공존 운동을 이끈 베티 윌리엄스(왼쪽 두 번째)와 머레이드 코리건(세 번째)의 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 전 모습. herstory.ie


1976년 8월 10일 오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교외 앤더슨스타운 번화가에서 차량 추격전이 벌어졌다. 영국 주둔군 정찰대가 북아일랜드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아일랜드공화국군 임시파(PIRA)의 테러 용의자들을 쫓던 중이었다. 쇼핑몰과 인파가 밀집한 그 구역에서 영국군의 총격에 도주 차량을 몰던 23세 남성이 즉사했고, 차량이 인도를 덮쳐 2~8세 소년 3명이 숨졌다. 의식을 잃고 살아남은 아이들의 어머니 역시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8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주차량 동승자는 피신에 성공했다.

현장 인근에서 사무접수원으로 일하던 30대 초반 여성 베티 윌리엄스(Betty Williams, 1943.5.22~ 2020.3.17)가 참사 직후 그 현장을 목격했다. 당시 북아일랜드에선 드문 일이지만, 윌리엄스는 가톨릭 교도 아버지와 개신교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종교적 관용의 가치에 눈뜰 수 있었다고 한다. 끊이지 않는 테러-보복테러의 유혈 사태를 겪으며 성장한 그에게도 그날의 참변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아이들의 이모인 머레이드 코리건(Mairead Corrigan, 1944~)을 만나 애도의 뜻을 전했고, 둘은 영국 개신교파-북아일랜드 가톨릭파 간의 갈등과 유혈사태를 종식하고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해 시민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영국의 북아일랜드 통치기구인 ‘북아일랜드 사무소(NIO)’의 비밀 문건이 유출됐다. 아이들의 희생이 PIRA에 대한 대중적 비난 여론을 촉발시키기 위해 NIO가 세심하게 기획한 작전의 결과였다는 거였다. 윌리엄스 등의 서명운동은, 가톨릭-개신교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애도와 평화 기도회 및 거리행진으로 확산되며 국제사회의 폭넓은 동조 여론을 이끌어냈다. 윌리엄스와 코리건은 ‘평화의 공동체(Community of Peace People)’란 단체를 설립해 늘 선두에서 행진과 행사를 이끌었고, 둘은 역대 최연소로 197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계속)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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