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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3년 전 약속 뭉갤 건가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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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11월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이정식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2년 11월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이정식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영섭 |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



정부가 지난 2022년 11월30일 야심차게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실종되었다.



2026년까지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망자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0.29로 낮추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이정식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관계부처를 대표하여 약속했었다. 규제와 처벌에 치중한 기존 방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사업주가 스스로 위험성을 평가해서 관리하는 자기 규율 예방체계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을 처벌규정과 예방규정으로 나누는 작업을 지난해 말까지 마치겠다고 했다.



그런데, 5개월이 지나도록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여전히 위험성 평가를 안 한다고 사업주를 처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안전보건규칙 679개 조항 중 어느 하나 예방규정으로 바뀐 게 없다. 짐작하건대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그 당시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몇가지 우려를 표명했었다. “사업주가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하도록 하는 포괄적 의무를 강행규정화하고 다른 경직된 규제를 푸는 것이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주 입장에서는 위험성 평가를 강제하는 것은 또 다른 규제의 추가에 지나지 않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안전보건규칙을 예방규정으로 하는 것은 대책 없는 규제 완화에 다름 아니다.” 이를 놓친 정부는 앞뒤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을 것이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영국 사례를 모범으로 삼았다. 1970년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인식한 영국 노동당 정부가 로벤스위원회를 꾸려 대책 마련에 나섰다. 2년 후 철저한 현상 분석과 혁신적 통찰을 담은 ‘로벤스 보고서’가 보수당 정부에 제출되고, 다음 노동당 정부에서 이를 법령으로 만들고 실현하였다.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의 확보라는 의무는 포괄적으로 강하게 부여하되 그 실현 방법을 자율에 맡긴 것으로, 사업주는 규제를 넘어 위험을 찾아 개선하는 데 진력할 수밖에 없다. 그 혁신적인 실효성이 영국을 세계 제일의 안전 국가로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1970년대 영국의 상황과 흡사하다. 경직되고 실효성 없는 규제가 넘치고 여러 기관이 감독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산업안전 분야의 감독 인력은 2배, 예산은 4배로 늘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했다. 하지만 산재 사고 사망률은 내놓기 부끄러운 수준이고 대형 사고가 빈발하여 ‘산재 공화국’이라는 자괴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로드맵의 마련은 적절했으나 맥을 잘못 짚었다. 지향점을 놓친 채 첫걸음을 내디뎠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국민 앞에 약속했던 목표를 실현할 제대로 된 방안을 다시 찾아야 한다. 안전이 중요하다는 캠페인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은 사업주도 노동자도 모르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을 실현하는 방안이다. 국면을 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시도가 아니라 영국처럼 처절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근본적인 혁신 방안을 마련하여, 노사를 설득하고 여야가 수용토록 해야 한다. 해명조차 없이 뭉개진 약속은 규제로 가하는 엄포마저 공허하게 만들 수 있다. 정부의 진솔한 반성과 책임 있는 대책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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