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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너구마을이 산불 피해를 비껴간 이유는?···굴참나무·소나무 공존하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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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산불 최초 발화지로 지목된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산불 발생 현장 인근에 초록색 풀이 돋아나 있다. 의성|권도현 기자

경북 산불 최초 발화지로 지목된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산불 발생 현장 인근에 초록색 풀이 돋아나 있다. 의성|권도현 기자


지난 3월 25일 경북 청송 주왕산 능선을 타고 밀려 오던 불길이 주왕산국립공원 너구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한밤 중 화마가 덮치자 마을 주민들은 읍내로 대피했는데, 다음날 마을로 돌아온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괴물 산불’은 폐가 한 채를 태웠을뿐 세간살이는 멀쩡했다.

너구마을 주민 이정현씨(66)는 “마을 밖은 다 탔으니까 우리 집도 다 탔겠거니 포기하고 왔는데, 피해가 없었다. 마을 인근 살아 남았던 불씨도 자연적으로 꺼졌다”고 말했다. 주왕산국립공원 산림 3분의 1(3260㏊)을 태운 산불이 너구마을을 빗겨간 이유는 무엇일까.

21일 그린피스가 낸 ‘보호받지 못한 보호지역: 보호지역 관리 실태 보고서’를 보면 주왕산국립공원 내 침엽수림 비율은 약 34%였고 활엽수림 비율은 약 60% 정도로 활엽수림 비율이 높다.

산불 피해가 집중된 곳은 국립공원 서쪽 지역인데, 주로 침엽수가 밀집돼 있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동쪽 지역은 굴참나무 군락 등이 혼재된 활엽수림이었다. 침엽수림에서 시작된 산불이 활엽수림까지 번지며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정된다.

침엽수림은 활엽수림에 비해 산불에 취약하다. 침엽수의 정유(기름) 함유량이 높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침엽수의 소나무의 경우 송진 정유 함유량은 20%에 달한다. 반면 물푸레나무와 졸참나무, 굴참나무 등 활엽수는 수분 저장능력이 뛰어나고 수피가 두꺼워 상대적으로 산불에 강하다.

이번 주왕산국립공원 산불에서도 침엽수 밀집 지역의 피해가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주왕산 일대 산불 피해 지역을 수종 구성에 따라 침엽수 우점 지역(침엽수 78%), 명확한 우점종 없음 2곳(활엽수 53.5%·침엽수42.2%, 침엽수49.0%·활엽수43.6%), 활엽수 우점 지역(활엽수 65.1%)으로 분류했다.


주왕산국립공원 인근 달기약수터 산불피해 현장. 반기웅 기자

주왕산국립공원 인근 달기약수터 산불피해 현장. 반기웅 기자


침엽수 우점 지역인 국립공원 서쪽 입구 달기약수터 일대(침엽수림 78%)는 이번 산불로 관광시설 대부분이 전소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지난 4월 29일 산불 발생 한 달여 만에 다시 찾은 현장에는 여전히 매캐한 탄내가 진동했다. 식당과 차량은 새까맣게 그을린 채로 방치돼 있었다.

반면 활엽수 비율이 65%에 달하는 주왕산국립공원 북동쪽 경계 지역(경북 영덕군 지품면 수암리)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 정밀 식생도로 봤더니 침엽수 군락이 있는 지점의 열화 피해가 심했다. 피해 지역에 있던 활엽수에서는 잎이 돋고 있었고, 전소된 나무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자연 방화대’ 역할하는 활엽수


불에 강한 활엽수는 자연 방화림 역할을 한다. 주왕산 국립공원 해발 400m 고지에 위치한 너구마을도활엽수 방화대 덕분에 산불 피해를 면했다.


너구마을은 활엽수(53.5%)와 침엽수(42.2%)가 거의 균등하게 형성돼 명확한 우점종이 없는 지역에 해당한다. 너구마을 인근에는 낙엽송과 소나무 등 침엽수가 있지만, 굴참나무 등 활엽수도 혼재했다.

그린피스는“해당 지역 서쪽은 산불 피해가 컸지만, 동쪽으로 갈수록 피해가 점차 줄었다”며 “서쪽에서 확산되던 산불이 활엽수림을 만나 기세가 약화돼 불길이 보호지역 외부로 우회하거나 차단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마을 반경 약 50m 지역에 졸참나무·물푸레나무 군락과 굴참나무 군락이 형성돼 있었고, 마을 입구에도 느티나무 여러 그루가 자리잡고 있었다.


현장 조사에 참여한 윤여창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 명예교수는 “마을 주변 느티나무와 참나무가 산불 저지선 역할을 해준 것으로 보인다”며 “불길이 마을 내 주택으로 옮겨 붙는 걸 막아준 셈”이라고 말했다.

윤여창 서울대 명예교수(농림생물 자원학)가 주왕산국립공원 내 너구마을 인근 활엽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윤여창 서울대 명예교수(농림생물 자원학)가 주왕산국립공원 내 너구마을 인근 활엽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폴란드 미츠키에비치 대학 시뮬레이션 “침엽수 단순림, 혼합림 보다 연소 비율 높아”


그린피스가 기후변화와 산불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 연구진에 의뢰한 산불 시뮬레이션 연구에서도 침엽수림이 혼합림에 비해 산불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산림 연료습도가 낮은 조건을 가정했을 때, 침엽수 단순림은 산불 시작 2시간 뒤 전체 산림의 30% 가량의 바이오매스(식물자원)가 연소됐다.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제공


반면 혼합림은 20% 수준의 바이오매스 피해에 그쳤다. 같은 침엽수 종이라 해도 침엽수 혼합림 내 침엽수의 피해가 단순림 내 침엽수 피해가 덜한 것인데, 단일림 구조가 상대적으로 산불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수종 다양성이 높은 숲은 산불 피해를 막을 천연 방패막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활엽수 비율이 65%에 달하는 주왕산국립공원 북동쪽 경계 지역. 산불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린피스 제공

활엽수 비율이 65%에 달하는 주왕산국립공원 북동쪽 경계 지역. 산불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린피스 제공


연구 결과를 검토한 이시영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시뮬레이션 상 침엽수림에서 산불이 수관층으로 옮겨붙으며 빠르게 확산되고, 혼합림에서 수관화의 확산이 느리게 진행됐다”며 “보다 정밀한 추가 분석과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침엽수 단순림의 산불 양상은 실제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고 했다.

산불 대형화 주요 요인 “식생구조·지형·바람”


다만 그린피스는 산불 대형화의 주요 요인을 ‘침엽수’만으로 좁힐 수는 없다고 했다.

예컨대 산불피해지 달기약수터 인근 사찰 백운사(청송군 청송읍)는 소나무 군락에 틈에 자리잡았지만 피해를 면했다. 백운사 동쪽 절벽 지형과 식생이 부족한 개활지가 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막아 산불을 둔화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식생구조 뿐 아니라 지형과 바람 또한 산불 대형화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너구마을도 활엽수 군락 뿐만 아니라 마을 특유의 계곡 지형과 바람이 산불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줬다. 지난 산불 당시 바람 아래에서 위로 불었고, 계곡 지형 영향으로 상승 기류가 형성됐다. 당시 불어오던 바람이 불길을 막아 화세를 약화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너구마을 권성환 이장은 “마을 주변이 협곡처럼 돼있는데, 그때 바람이 불어서 불이 오다가 돌아간 것”이라며 “순간적으로 부는 바람 방향 영향이 큰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다양한 종이 공존하는 복합적이고 자연적인 숲을 적극적으로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산불 예방과 피해 최소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며 “산불 피해 이후 생태계 회복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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