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20일,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1999년 5월20일 대구 한 골목길에서 발생한 '황산 테러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김태완군 생전 모습./사진=KBS '추적 60분' 방송 화면 캡처 |
26년 전 오늘, 1999년 5월20일 오전 대구 한 골목길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신원미상의 범인이 5세에 불과한 김태완군에게 갑작스럽게 '황산 테러'를 가하면서다. 최악의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은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이다.
태완군은 얼굴과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시력도 잃었다. 49일간 작은 얼굴과 몸을 하얀 붕대로 칭칭 감고 힘겹게 병원 생활을 견뎌냈지만 입 속에 황산이 들어간 탓에 패혈증으로 끝내 세상을 떠났다.
태완군은 병상에서 범인을 묻는 말에 '○○(치킨집) 아저씨'라고 여러 차례, 분명히 답했으나 수사기관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범인을 특정하지 않고 사건을 영구미제로 남겼다.
이 사건으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논의가 불붙어 '태완이법'으로 불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2015년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로써 살인죄 공소시효는 폐지됐으나 정작 태완군 사건은 이전에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1999년 5월20일 대구 한 골목길에서 발생한 '황산 테러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김태완군이 생전 병상에서 엄마에게 사건 당일에 대해 증언하는 모습./사진=KBS '추적 60분' 방송 화면 캡처 |
태완군은 사건 당일 평범한 아침을 맞았다. 엄마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있다가 큰이모 집에 들러 친구 집에 갔고 다시 미용실에 들렀다가 가방을 챙겨 학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태완군 뒤에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억지로 입을 벌려 황산을 들이부었다. 태완군이 힘겹게 이어간 증언에 따르면 까만색 비닐봉지 안에 든 무언가를 뒤쪽에서 얼굴에 뒤집어씌웠다고 한다. 멀리서 황산을 뿌린 정도가 아니라 5세 아동에게 이처럼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작은 얼굴과 몸 전체를 하얀 붕대로 칭칭 감고 병원 생활을 하던 태완군은 5일 만에 의식을 찾고 엄마가 묻는 말에 힘겹게 대답을 이어갔다. 말하기 힘겨워 보였지만 증언은 분명하고 일관됐다.
그는 범인을 묻는 말에 계속해서 한 사람을 언급했다. 당시 태완군 부모가 진술 확보 차원에서 녹음한 영상에 따르면 태완군은 골목길에 들어설 때 '○○(치킨집) 아저씨'를 만났고 전봇대 있는 쪽에서 '○○ 아저씨'가 불렀다고 했다. 엄마가 '또 본 사람이 있느냐' 등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태완군은 계속 이 아저씨만 언급했다.
또 사건을 목격한 태완군 친구도 같은 사람을 지목했는데 경찰은 이들의 증언을 유력한 증거로 삼지 않았다. 이 친구는 지능에 문제가 없지만 청각장애가 있었는데 어눌한 말투 탓에 진술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태완군과 친구가 지목한 성인 남성의 신발에서 황산이 발견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지만 경찰은 이 신발이 다른 옷가지랑 같이 보관돼 있어 유의미한 증거라고 보지 않았다.
태완군은 49일의 병원 생활 끝에 생일을 9일 앞둔 1999년 7월8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태완군 어머니는 병상일지 격으로 쓴 '49일 간의 아름다운 시간'을 통해 "나는 작고 예쁜 태완이를 지켜주지도 못하고 나쁜 아저씨가 누군지 찾아주지도 못한 바보 같은 엄마"라고 썼다.
1999년 5월20일 대구 한 골목길에서 발생한 '황산 테러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김태완군 생전 모습./사진=KBS '추적 60분' 방송 화면 캡처 |
이후 유족과 시민단체가 2013년 11월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하면서 다시 수사가 이뤄졌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이후 공소시효 만료를 3일 남겨둔 2014년 7월4일 유족이 태완군 진술을 토대로 '○○ 아저씨'를 검찰에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한국범죄심리센터와 서울경찰청 등이 태완군 생전 진술을 분석한 결과 '진술이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이어 대구고법에 재정 신청을 냈지만 법원 역시 증거가 부족하다며 유족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남성을 가해자로 특정하기 어렵고 제출된 자료와 수사 기록만으로는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는 사이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다만 이 사건으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여론에 힘이 실리면서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일명 '태완이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다만 태완군 사건은 개정된 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태완군 어머니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부모에게 공소시효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며 "(태완이법으로 인해 미제 살인사건) 유족들의 가슴 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성희 기자 y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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