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 제임스 자바라- 1
1942년 7월 독일 공군의 메서슈미트 Me 262의 등장과 함께 제트전투기 시대가 시작됐다. Me 262는 엔진 내구성과 추력 등을 개선해 44년 4월 처음 실전에 투입됐고, 영국 최초의 제트 전투기 글로스터 미티어도 43년 3월 첫 시험비행에 성공한 뒤 44년 7월 참전했다. 영국과 독일의 제트 항공엔진 기술은 전후 미국과 구 소련 공군 전력의 초석이 됐다.
미국이 공군을 창설(1947년)하기 전이었다. 두 대양을 방어막처럼 둘러 본토가 폭격당할 위험이 거의 없던 당시 미국에 공군력, 특히 첨단 전투기는 전력 우선순위에 있지 않았다. 다만 미국은 전시 영국의 요청에 따라 영국 기술을 기반으로 개량된 제트 전투기를 개발-양산하는 기지로서 기여했다. 하지만 벨사의 ‘P-59 Airacomet’ 등 초기 모델은 엔진 성능 등 여러 면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
사실상 미국의 첫 제트 전투기는 록히드사의 ‘P-80 슈팅스타’라 해도 무방하다. 44년 1월 첫 비행에 성공한 뒤 양산체제에 들어간 P-80은 45년 2월에야 이탈리아 전선에, 전투가 아닌 정찰 임무에만 투입됐지만, 47년 이후 미 공군의 첫 주력기로서 전후 유럽 전역에 배치돼 구 소련의 미그-15 등을 견제했다.
대한민국 수원 공군기지에 배치된 미 공군 제51전투비행단 소속 F-86 세이버들이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dpaa-mil.sites.crmforce.mil |
1942년 7월 독일 공군의 메서슈미트 Me 262의 등장과 함께 제트전투기 시대가 시작됐다. Me 262는 엔진 내구성과 추력 등을 개선해 44년 4월 처음 실전에 투입됐고, 영국 최초의 제트 전투기 글로스터 미티어도 43년 3월 첫 시험비행에 성공한 뒤 44년 7월 참전했다. 영국과 독일의 제트 항공엔진 기술은 전후 미국과 구 소련 공군 전력의 초석이 됐다.
미국이 공군을 창설(1947년)하기 전이었다. 두 대양을 방어막처럼 둘러 본토가 폭격당할 위험이 거의 없던 당시 미국에 공군력, 특히 첨단 전투기는 전력 우선순위에 있지 않았다. 다만 미국은 전시 영국의 요청에 따라 영국 기술을 기반으로 개량된 제트 전투기를 개발-양산하는 기지로서 기여했다. 하지만 벨사의 ‘P-59 Airacomet’ 등 초기 모델은 엔진 성능 등 여러 면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
사실상 미국의 첫 제트 전투기는 록히드사의 ‘P-80 슈팅스타’라 해도 무방하다. 44년 1월 첫 비행에 성공한 뒤 양산체제에 들어간 P-80은 45년 2월에야 이탈리아 전선에, 전투가 아닌 정찰 임무에만 투입됐지만, 47년 이후 미 공군의 첫 주력기로서 전후 유럽 전역에 배치돼 구 소련의 미그-15 등을 견제했다.
1950년 한국전쟁은 미-소 진영 제트기의 첫 공중전 무대였다. 2차대전 육군항공대에서 활약한 뒤 공군에 합류한 젊은 파일럿들 중 P-80으로 훈련 받은 제트기 파일럿 1세대들이 그 전쟁에 대거 투입됐다. 그들은 50년 11월 중공(중국) 미그기가 압록강을 넘나들기 전까지 한반도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하며 전쟁 초반 북한군의 남하 기세를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들 미 공군 원년 제트기 파일럿들 가운데 제4전투비행단 제334 전투요격비행대대 소속 만 27세 대위 제임스 자바라(James Jabara, 1923~1966)가 있었다.(계속)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