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인도와 파키스탄 간 휴전이 발표된 뒤 파키스탄 물탄에서 시민들이 이를 축하하고 있다. 물탄/신화 연합뉴스 |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새 정부가 ‘전쟁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기를 바란다. 내란 국면에서 한반도는 아찔한 전쟁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독재를 위해 전쟁을 이용하려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한반도 전쟁 억제의 구조가 작동했다.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국이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 망한다는 공포의 균형이 작동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전쟁은 언제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전쟁 걱정 없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최근 인도·파키스탄의 전쟁에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첫째는 핵무장이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보유국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은 핵무장이 전쟁을 막는다고 주장한다. 서로 핵무기를 사용하면 공멸하기 때문에 전면전을 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인도·파키스탄 사례는 핵무장이 오히려 제한전쟁을 부추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핵 억지로 제한 공격을 해도 상대가 전면전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핵무장을 해도 재래식 전력에 상당한 국방비를 투입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제한전쟁이라 하더라도 정교한 무기와 넓어진 전장으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평화는 핵무기가 아니라, 관계의 변화로만 가능하다. 휴전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상처는 깊고, 폭력의 악순환 구조가 여전하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체성의 정치가 심해지면, 얼마든지 의도하지 않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적대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없으면 결국 평화는 오지 않는다.
둘째는 접경 평화의 중요성이다. 카슈미르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쟁지역이고, 이산과 분단 그리고 피로 얼룩진 전쟁의 땅이다. 분쟁의 땅에서도 화해의 노력이 있었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파키스탄령과 인도령의 실질 통제선을 넘나드는 평화의 버스가 다녔다. 2만여명의 이산가족이 만났고, 국경무역이 늘었다. 그러나 접경이 불안해지면 삶이 고달파진다. 경제라는 꽃은 언제나 평화의 땅에서 핀다. 버스가 끊어지고 충돌이 벌어지자, 오래전 지상의 천국으로 불렸던 카슈미르는 지상의 지옥으로 변했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는 과거 전쟁의 상처이고 현재 적대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미래로 가는 입구다. 우선 전쟁 예방을 위해서는 충돌 가능성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즉시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대북 전단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9·19 군사합의를 복원해야 한다. 평화가 오면 서쪽의 강화도에서 동쪽의 고성까지 경제가 살아난다. 접경에서 ‘평화가 경제’라는 말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이다.
접경의 평화를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국토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를 언제까지 과거의 땅으로 방치할 것인가? 노태우 정부의 ‘평화시’부터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의 구상은 역사가 길다. 이제는 과거의 접근법에서 달라져야 한다. 개발에서 환경으로, 산업에서 문화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바뀐다고 금방 평화가 오지 않는다. 불신의 계곡에서 벗어나려면, 다시 신뢰를 하나씩 쌓아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두를 일이 아니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다 크게 후퇴하지 말고, 작은 발걸음이라도 하나씩 전진하면서 지속 가능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달라진 세계에서 남북 관계의 새로운 출발은 접경 협력이다. 전쟁이 끝나고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해서 영혼이라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무이다.
전쟁의 땅 비무장지대를 평화의 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서로 이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더불어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권역별 맟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비무장지대의 동부권은 원산 갈마와 금강·설악을 잇는 관광지대로, 중부권은 환경·생태지역과 문화재 복원지대로, 서부권은 평화 교류지대로 만들자. 지역별로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하는 소규모 독립형 전력망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전쟁 걱정 없는 나라를 위해, 그리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평화를 만드는 정치문화가 필요하다. 내란의 진정한 극복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폭력 정치의 퇴출과 분열을 조장하는 증오 정치의 퇴장으로 가능하다. 평화는 평화적 수단으로만 만들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무엇보다도 평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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