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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월 만에 영월의료원서 아기 태어난 이유···백방으로 지역의료원 살린 원장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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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평창·정선 아우르는 유일한 종합병원
분만병동 정상화, 2년 만에 아기 울음 들려
간호간병통합병동 확대, 병상 가동률 85%
의사 구인난→연봉 상승→경영난 '악순환'
공공의대·지역의사제 등 공공성 확보해야
'착한 적자' 국가 책임, 병원 혁신 병행해야
"취약지 국민 위해 의료 불균형 해소 필요"


서영준 영월의료원장이 지난 9일 강원 영월군 영월의료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보건행정학자이자 공공의료 전문가인 서 원장은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의료 정책에 대한 질타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영월=김표향 기자

서영준 영월의료원장이 지난 9일 강원 영월군 영월의료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보건행정학자이자 공공의료 전문가인 서 원장은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의료 정책에 대한 질타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영월=김표향 기자


"응애~ 응애~"

지난해 5월 강원 영월군 영월의료원에서 21개월 만에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동안 영월 아기들은 원정 출산으로 탄생했는데 영월의료원이 산부인과를 재정비하면서 한적하던 분만병동이 분주해졌다. 영월 전체의 경사였다. 그 후로 6명이 더 태어났고, 올해도 분만 예정자가 10명이 넘는다.

영월의료원 사례는 수도권 중심 의료체계 속에서 지역 공공병원의 사명을 잘 보여준다. 21대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공공의료 강화를 보건 공약 전면에 내세웠다. '진료권 중심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이 그것이다. 하지만 적자투성이 지역의료원에 대한 불신은 뿌리 깊고, 예산 낭비로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

'공공의료' 확충 공약이 성공하기 위해선, 공공병원의 역할 때문에 발생하는 태생적 '착한 적자'를 정부가 보전해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의사 배출을 늘려야만 성공할 수 있다. 부족한 의사 때문에 지역의료원이 의사를 '모셔' 오려면 막대한 연봉을 줘야 하고, 이는 공공병원의 재정 악순환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 9일 지역의료원의 성공사례로 알려진 영월의료원을 찾아 공공의료 확충 공약이 성공하기 위한 필요 조건들을 살펴봤다.

지난해 5월 21일 강원 영월군 영월의료원에서 21개월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서영준(왼쪽 두 번째) 원장과 의료진이 아이를 품에 안은 산모(가운데)를 축하해주고 있다. 영월의료원 제공

지난해 5월 21일 강원 영월군 영월의료원에서 21개월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서영준(왼쪽 두 번째) 원장과 의료진이 아이를 품에 안은 산모(가운데)를 축하해주고 있다. 영월의료원 제공


영월의료원에서 다시 아기를 받기까지


올해 개원 80년을 맞은 영월의료원은 17개 진료과, 188개 병상으로 규모는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공공병원의 롤모델'로 꼽힌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경영 평가에서도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영월, 평창, 정선을 통틀어 유일한 종합병원이자 지역거점병원으로 3개 지역 주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

2023년 9월부터 영월의료원을 이끌고 있는 서영준 원장은 취임 직후 병원 현황을 살펴보다 2년간 산부인과 분만 실적이 0건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월이 시골이어도 출생아가 아예 없진 않을 텐데' 의아했다. 내막을 알아보니 영월에서 출생신고가 연간 100건가량 이뤄지지만, 산모들이 모두 타 지역 병원에서 출산한 것이었다. 산부인과 의료진이 야간·주말 분만을 꺼리는 등 진료에 소극적이었고, 마취과 의사가 부족해 응급 분만도 쉽지 않았던 탓이다.


국가 지원을 받는 분만병동을 이대로 방치할 순 없었다. 기존 의료진을 모두 내보낸 뒤 분만 경험이 많은 60대 전문의 두 명을 채용했다. 서 원장은 "하반기에 공공산후조리원이 문을 열면 아기 울음소리가 더 자주 들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산부인과 의료진이 바뀐 뒤 진료 실적도 두 배 이상 뛰었다. 자극받은 다른 진료과도 분발한 덕분에 진료 실적이 30% 증가했다. 서 원장은 "의사들의 의식과 태도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월의료원은 환자들이 다른 도시로 원정 진료를 가지 않도록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을 기존 40병상에서 84병상으로 두 배 늘렸다. 간병비 부담이 확 줄어드니 환자들이 몰렸고, 병상 가동률이 60%에서 85%로 상승했다. 35개 전국 의료원 중 최고 수준이다.

의사 공급체계 변화 없이, 공공의료 활력 못 얻어


영월의료원도 여느 지역 공공병원처럼 의사 구인난에 골머리를 앓는 건 마찬가지다. 전문의는 총 17명. 진료과별로 1명꼴이다. 의사가 병원을 그만두거나 휴가라도 가면 진료과가 휴진할 수밖에 없다. 소화기내과는 6개월간 비어 있다가 다음 달부터 다시 가동된다. 서 원장은 "현재 정형외과, 내과, 소아과만 전문의 2명이 확보돼 있다"며 "진료과별로 전문의가 최소 2명은 있어야 환자를 안정적으로 돌볼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래픽= 강준구 기자

그래픽= 강준구 기자


의료 접근성은 환자 생명과 직결된다. 치료가 제때 효과적으로 이뤄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치료 가능 사망' 비율(보건복지부·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이 강원은 인구 10만 명당 51.21명(2022년 기준)으로 충북(52.92명), 인천(51.31명)에 이어 세 번째로 높고, 서울(40.25명)과 비교하면 무려 10.96명이나 많다. 서 원장은 "응급실에도 전문의가 있지만 배후 진료가 뒷받침되지 않아 위중한 환자는 인근 원주와 제천의 큰 병원으로 이송하는 수밖에 없다"며 "타 지역 종합병원과 업무협약을 맺는 등 진료협력체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의사 연봉도 문제다. 인건비 부담은 경영 악재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다시 의사를 뽑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된다. 서 원장은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연봉이 올라간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전남 한 의료원은 연봉 6억2,000만 원을 주고 정형외과 의사를 구했고, 경남 한 의료원에서는 영상의학과 의사 연봉이 2년 만에 3억6,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1억 넘게 뛰었다. 심지어 경북 한 의료원은 연봉 4억 원을 제시하고도 2년째 내과 의사를 뽑지 못했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영월의료원 전경. 17개 진료과, 188개 병상을 갖춘 영월의료원은 영월, 평창, 정선을 아우르는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영월의료원 제공

영월의료원 전경. 17개 진료과, 188개 병상을 갖춘 영월의료원은 영월, 평창, 정선을 아우르는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영월의료원 제공


서 원장은 "시장경쟁에 내맡겨진 의사공급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병원 의사 인건비를 지원하고, 장기적으로는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지역인재전형 확대, 지역의사 도입으로 의사들이 지역에 남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상대적으로 사명감이 떨어지고 적극 진료를 기피하는 공중보건의 복무 기간은 단축하고, 의대에 여학생이 거의 절반에 달하는 만큼 남녀 모두 의대 졸업 후 일정 기간 취약지 공공병원 근무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파격 제안도 내놨다. 서 원장은 "공공병원은 의사가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의료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다"며 "의사 양성의 공공성을 강화하되 취약지 근무에 따른 보상 등 지원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픽= 강준구 기자

그래픽= 강준구 기자


이재명 후보는 '지역의사·지역의대·공공의료사관학교 신설로 지역·필수·공공의료 인력 확보'를 내세우고 있다. 현 정부는 근무수당, 정주여건을 지원해 지역필수의사를 뽑는 시범사업을 시행할 예정인데, 이 후보는 아예 지역의사 배출을 따로 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 배출은 의사계가 강력 반발하는 사안으로, 이 제도의 성패와 공공의료 확충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영준 영월의료원장이 9일 강원 영월군 영월의로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 원장은 직원들에게 병원 공간을 모두 내주고, 병원 옆 다른 건물에 사무실을 마련해 일하고 있다. 예전에 어린이집이었던 곳이라고 한다. 영월=김표향 기자

서영준 영월의료원장이 9일 강원 영월군 영월의로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 원장은 직원들에게 병원 공간을 모두 내주고, 병원 옆 다른 건물에 사무실을 마련해 일하고 있다. 예전에 어린이집이었던 곳이라고 한다. 영월=김표향 기자


잘 경영해도 '착한 적자' 불가피···감당할 의지 있어야


아무리 잘 운영되는 지역의료원이라도 인구가 많지 않은 곳에서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 공공병원이 영업만으로 흑자를 내기는 어렵다. 더구나 코로나19 팬데믹 3년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일반 진료와 수술을 못해 환자가 떠났고, 코로나가 끝났지만 환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 비교적 튼튼했던 지역의료원까지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예를 들어 2019년 81.7%였던 부산의료원의 병상 가동률은 지난해 38.9%로 떨어졌다. 전국 41개 지역의료원·적십자병원은 지난해 평균 156억원의 적자가 쌓였다.

하지만 정부 지원은 부실하다. 2023년 말 국회는 공공병원 회복기 지원 예산을 1,000억 원 통과시켰지만, 예산이 제때 집행되지도 않았다. 영월의료원도 지난해 지자체 지원금 7억2,000만원이 올해로 이월된 영향 등으로 적자 13억 원을 기록했다.

지역의료원, 지역 안전망으로 접근 필요


영월의료원은 2029년 신축 이전한다. 7층 건물에 25개 진료과, 300병상 규모로 확대된다.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신경과, 신경외과, 안과, 정신건강의학과 병동 개설도 추진할 계획이다. 인구가 감소하는데 병원을 지어 세금만 축내는 것 아니냐는 일부 그릇된 시선에 대해 서 원장은 일침을 가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건 맞아요. 그러나 의료인구는 다른 개념입니다. 노인은 질환율이 3, 4배 높아요. 중증, 응급도 많고요. 도시와 달리 지방에선 공공병원이 있느나 없느냐에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해요. 사는 곳이 다르다고 목숨 값도 다르게 매겨져야 합니까? 영월군민, 강원도민 이전에 의료취약지에 사는 국민이에요. 국가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가 설립에 기여한 성남시의료원 적자 등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실상은 원장을 장기간 공백으로 두는 등 지자체의 의지 부족이 지역의료원의 부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공공병원이 전체 의료기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남짓이고, 병상 수는 국립대병원을 다 포함해도 10%에 불과하다. 공공병원 비중이 50%가 훌쩍 넘는 유럽 주요국은 물론,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미국(20%대)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다.

서영준 영월의료원장이 지난해 5월 22일 세경대에서 간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 서 원장은 지역 내 간호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영월의료원 제공

서영준 영월의료원장이 지난해 5월 22일 세경대에서 간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 서 원장은 지역 내 간호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영월의료원 제공


서 원장은 "아프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의료 안전망, 그것이 공공병원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경영·정책을 전공한 보건행정학자이자 공공의료 전문가(계명대 의대 예방의학 교수, 삼척의료원장, 연세대 보건행정학 교수 역임)로서 전공을 발휘해 자신의 신념을 실현해가고 있는데, 다른 지역의료원들도 참고해야 할 사항이 많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확대에 최대 걸림돌이었던 간호사 구인 문제는 발로 뛰어 해결했다. 영월 세경대 간호학과를 찾아가 특강을 하면서 직접 인재 유치를 했다. 덕분에 간호사를 40명이나 새로 채용할 수 있었다. 조그만 병원이 일자리 창출을 했다며 행정안전부는 표창까지 수여했다. 물론 의정 갈등이 터져 환자가 줄면서 대형병원이 간호사를 뽑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군청과 의료원이 각각 30만 원, 간호사 본인이 20만 원 등 매달 80만 원씩 적금을 들어 3년 근무를 마치면 3,000만 원을 지급하는 '청년간호사 근로장학금' 제도도 도입했다. 영월 내 공공기관들과 의기투합해 미혼 직원들을 서로 소개해주는, 영월 버전 '나는 솔로'도 성사시켰다. 젊은 직원들이 병원을 떠나지 않고 영월에 뿌리 내리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취약계층을 위한 보호자 없는 병실, 안전한 사회 복귀를 위한 자체 퇴원 환자 평가 시스템, 퇴원 후 방문 간호 서비스 연계, 원격 진료 등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정책도 눈에 띈다. 서 원장은 "환자의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는 게 공공병원의 가장 이상적 모습"이라고 말했다.

영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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