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이 대미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
정남구 l 경제산업부 선임기자
4월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25% 등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를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다음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주요 수출 산업 대표자들을 엘리제궁으로 불러 긴급회의를 열었다. 항공우주산업협회장, 자동차산업플랫폼회장, 식품산업협회장, 뷰티기업연합회장과 마르크앙투안 자메 루이뷔통(LVMH)그룹 사무총장, 프랑스 최대 기업연합체 메데프의 파트리크 마르탱 회장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의 관세 조처는 잔혹하고 근거 없는 결정”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관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최근 발표했거나 예정된 미국 내 투자를 보류해달라.”
마크롱의 말에, 그 열흘 전 있었던 현대차 그룹의 ‘미국 투자’ 발표가 떠올랐다. 정의선 회장은 3월24일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백악관 행사에서 “앞으로 4년간 미국 내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의 추가 신규 투자를 기쁜 마음으로 발표”했다.
향후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 관세가 어떻게 결정되든, 현대차는 미국 생산을 크게 늘리는 것이 무조건 이득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총수 일가와 주주들에게 좋은 것이 국민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닐 때도 있다. 현대차의 결정은 국내 고용과 부가가치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현대차는 국외 투자를 확대해도 국내 투자가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국내에 투자하면 더 좋을 게 외국으로 나간다는 점까지 부정할 수 없다. 현대차의 일방적인 결정에 우리는 ‘배신이야’라고 따져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으로 권력 중심이 공백인 상태에서 현대차의 결정은 회심의 승부수라도 되는 것처럼 흘러 지나갔다.
트럼프 관세는 한국 경제를 냉기에 휩싸이게 하고 있다. 내수 침체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 충격으로 수출이 급감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4일 우리 경제가 올해 0.8%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성장률도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1.6%로 전망했다.
이것만 보면 트럼프 관세 정책은 우리 경제에 재앙인 것처럼만 비친다. 단기 영향은 분명 그렇다. 그런데 트럼프 관세 정책의 중기 영향에 대한 여러 연구기관의 시뮬레이션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뼈아픈 부분이 담겨 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아시아경제연구소가 3월27일 낸 ‘트럼프 상호관세가 세계 및 아시아 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도 그 한 사례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전세계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20%의 추가 관세를 적용”할 경우, 2027년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은 2% 감소, 중국은 0.9% 감소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과 대만은 0.6%씩, 일본은 0.2% 증가 효과가 난다고 봤다. 한국의 전기·전자 산업이 0.9%, 자동차가 0.5% 성장한다고 했다. 이는 우리가 트럼프 관세에 화를 내는 동안 잊고 있던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 제조업이 중국의 추격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것, 그것이 더 큰 위기의 뿌리라는 사실 말이다.
오늘날 기업은 생산과 고용의 주체이며, 혁신의 주체다. 그러나 어느 때든 기업 혼자서는 다 할 수 없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발전에도 정주영·정세영이란 뛰어난 경영자의 공이 컸지만, 정부의 국산 장려, 도로 우선 확충과 주차장 없는 차량 구입 허용, 주기적인 개별소비세 감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원이 이어졌다. 현장 기술자의 창의성과 협력도 혁신의 중요한 축이다. 지금 우리는 이 세가지 힘을 잘 결합해 파도를 헤쳐나가야 하는 긴박한 처치다. 모두가 절벽 위에 선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현대차도 혼자만 잘살겠다고 뛰쳐나가지 말고, 손잡고 함께 움직여야 한다.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이익도 늘리고, 세금도 많이 내는 기업을 늘리는 게 좋은 경제 정책이다.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일도 아니다. 간단명료한 해법은 대개 사기꾼의 말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바로 그렇다. 세금 깎고, 임금 인상 억제해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게 하겠다던 윤석열 정부 정책의 참담한 결과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다. 그것은 기업을 게으르고 병들게 하고, 분배의 악화와 그로 인한 내수침체를 깊게 하는 처방일 뿐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그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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