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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년이 온다' 주인공 모티브 된 문재학 열사 재조명

뉴스1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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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기념식서 사연 소개

끝까지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산화



최후항쟁일인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산화한 문재학 열사의 모습. (국립5·18민주묘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후항쟁일인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산화한 문재학 열사의 모습. (국립5·18민주묘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1980년 5월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계엄군에 맞서다 산화한 10대 학생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모티브가 된 문재학 열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함께, 오월을 쓰다'를 주제로 열린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문 열사의 사연이 조명됐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16살이자 광주상업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던 문 열사는 시민들을 총칼로 짓밟은 계엄군들의 만행을 목격한 뒤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5월 23일부터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민주화운동 본부인 전남도청에 머물며 사상자들을 돌보고 유족을 안내하는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양창근 군(당시 16세)이 총에 맞아 주검으로 실려 온 모습을 마주했다.

동창인 '창근'의 시신을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는 어머니가 '집에 가자'며 직접 도청으로 찾아왔음에도 '수습 후 집에 가겠다'며 어머니를 돌려보냈다.


26일 광주로 계엄군이 다시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에도 문 열사는 도청에 남았다.

그날 밤 문 열사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끝까지 남기로 했다. 학생은 손 들면 안 죽인다고 했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 문 열사의 말은 마지막 말이 됐다. 그는 최후항쟁일인 27일 새벽,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졌다.


가족들은 막내아들인 그의 시신을 찾아 나섰지만 수일째 찾지 못했다.

6월 6일, 언론에 실린 사망자 명단에서 문 열사의 이름과 상고 교복 차림 등 그의 인상착의를 확인한 담임선생의 연락을 받고서야 가족들은 문 열사를 찾을 수 있었다. 사망 열흘여만이다.

문 열사는 망월동에 가매장된 채 있었고, 가족들이 무덤을 파헤쳐 신원을 확인했다.


그는 계엄군에 맞서 끝까지 싸운 10대 시민군 3인 중 1명이기도 하다.

그의 사연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친구 정대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도청에 남은 주인공 '동호'의 모티브가 됐다.

문재학 열사는 국립5·18민주묘지 1묘역 2-34번에 잠들어 있다.

pepp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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