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따뜻을 전해온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명사들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들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공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과 영감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편집자 주]
[대담=예종석 명예대기자(한양대 명예교수)·정리=이지현 기자] “탄핵은 과거에 대한 지탄인데 시민이 부르는 노래는 ‘다시 만난 세계’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참 절묘했다.”
언론인 김중배(91) 선생은 지난해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 소식이 전해진 국회 앞 광장에서 200만 시민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부르던 모습을 이같이 평가했다. 과거의 잘못을 심판하는 탄핵이라는 역사적 순간, 시민은 분노와 슬픔 대신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노래로 응답했다는 점을 가장 인상적인 일로 꼽은 것이다.
김 선생은 “사회과학 하는 분들이 우연과 필연의 변증법을 말한다”며 “우연인 것 같지만 그게 필요인 것 같은 요소들이 있다. 우연만으로 이게 되는 건가? 우연이 축적돼 필연성이 나온다. 우연으로 넘기면 필연성은 안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전엔 박정희, 전두환을 탄핵하지 못했다”며 “현재 시민은 계엄령 철회를 요구했다. 우린 언론은 그런 시민의식을 가지면 된다.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말했다.
언론인 김중배 선생이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
[대담=예종석 명예대기자(한양대 명예교수)·정리=이지현 기자] “탄핵은 과거에 대한 지탄인데 시민이 부르는 노래는 ‘다시 만난 세계’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참 절묘했다.”
언론인 김중배(91) 선생은 지난해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 소식이 전해진 국회 앞 광장에서 200만 시민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부르던 모습을 이같이 평가했다. 과거의 잘못을 심판하는 탄핵이라는 역사적 순간, 시민은 분노와 슬픔 대신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노래로 응답했다는 점을 가장 인상적인 일로 꼽은 것이다.
김 선생은 “사회과학 하는 분들이 우연과 필연의 변증법을 말한다”며 “우연인 것 같지만 그게 필요인 것 같은 요소들이 있다. 우연만으로 이게 되는 건가? 우연이 축적돼 필연성이 나온다. 우연으로 넘기면 필연성은 안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전엔 박정희, 전두환을 탄핵하지 못했다”며 “현재 시민은 계엄령 철회를 요구했다. 우린 언론은 그런 시민의식을 가지면 된다.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말했다.
그는 1957년 한국일보 견습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딘 뒤, 민국일보를 거쳐 1963년부터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1982년 3월부터 ‘그게 이렇지요-김중배 세평’을 연재하며 당대의 대표적 시사칼럼니스트로 명성을 얻었다. 1990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올랐으나 이듬해 자본의 언론 통제에 항거해 사표를 내고 언론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섰다. 이후 한겨레 신문과 MBC 사장을 역임하며 언론개혁, 시민운동에 헌신한 68년차 언론인이다.
-90대라고 상상할 수 없다. 건강비결은
△특별한 비결은 없다. 평생 술을 끊거나 줄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후배들과 어울리며 담론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건강이 특별히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골고루 먹고 일상을 즐기려 노력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 당시 언론 환경은.
△그때는 권력이 언론을 노골적으로 통제했다. 압수수색, 보도지침, 심지어 깡패 동원까지… 언론의 자유는 늘 위태로웠다. 집에 폭탄을 던지는 등 물리적 위협도 빈번했다. 당시 언론인은 체포, 구금, 고문, 심지어 살해 위협에 노출됐고 이는 제도적·비제도적 억압이 혼재된 시대였다. 4.19혁명 이후 잠시 언론 자유가 확대됐으나 1961년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다시 언론 통제가 시작됐다. 박정희 정권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통한 감시, 남산 지하실 취조, 언론사 폐간, 언론인 체포 등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탄압을 강화했다. 유신체제(1972~1979년)에서는 긴급조치, 보도지침 등으로 언론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제한했다. 전두환 정권 역시 1980년 언론통폐합, 보도지침, 검열, 남산 지하실 고문 등 폭력적이고 조직적인 억압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때로는 울기도 했다.
언론인 김중배 선생. (사진=방인권 기자) |
-1991년 김중배 선언…벌써 34년이 지났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던 때 ‘언론은 이제 권력과의 싸움보다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라는 퇴임사가 한국 언론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남겼는데.
△벌써 그리됐나? 난 다 잊어버렸다. 그 당시에는 권력의 계도적 압력과 규제가 있었다. 뭘 보도하면 안 된다는 소위 보도지침이라는 게 있었다. 논평하면 안 된다고 하는 엄격한 외부통제가 있었다. 언론 탄압이고 규제와 억압이었다. 지금은 그런 건 아니지 않나? 그땐 거의 권력이 직접 통제하는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희석이 됐다. 언론이 권력이나 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발적으로 종속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언론을 둘러싼 환경은 더욱 복잡해는데.
△이미 사회는 정서적 양극화를 넘어 전인적 양극화로 가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언론인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새로운 문명과 사회구조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변하고 있다. 디지털 문명이 몇십 년 전부터 발전하면서 전혀 다른 감성, 사고체계를 가진 새로운 인종이 등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디지털 문명에 대해, 그리고 우리 삶에 대해서 말이다. 이제는 언론인만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디지털 문명과 사회 변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력, 공감능력, 사회적 책임의식 등 민주시민의식이 언론 자유의 토대가 돼야 한다. 도덕, 상식, 예의, 질서라는 것은 혼자 살기 위한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이다. 디지털 시대의 시민성은 민주주의와 함께 발전해야 하며 정보의 진위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미안하다. 굉장히 많은 짐을 짊어진 거 같다. 이승만, 박정희 시절에는 물리적 탄압과 제도적 압력이 공공연했다. 지금은 그런 노골적인 통제는 줄었지만 여전히 권력과 자본의 영향력은 남아 있다. 특히 자본중압은 이전보다 커졌다. 기상형 광고는 기존엔 생각하지도 못한 장르다. 자본의 통제는 점점 가중되고 있는 편이다. 이것도 이겨내야 한다. 새로운 문명의 과제들이 대전환시기를 맞고 있다. 생활 대전환을 동반해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도 다 감당해야 한다.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의 등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유튜브라는 미디어가 생긴 것은 언론의 자유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방송국 하나 세우려면 수백억이 들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만인에게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하드웨어가 마련된 것이다. 이건 획기적인 일이다. 누구나 미디어를 만들 수 있다. 표현의 자유가 확대된 셈이다. 하지만 그림자도 생기면서 (서부지법 폭거 등과 같은) 이런 현상도 일어나는 것이다. 제도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탄핵 국면에서 극우세력의 폭력사태가 있었는데.
△사법부를 폭동으로 침탈했다는 건 우리 역사상 없었던 일이다. 비제도적인 집단의 폭력사태는 대단히 보기 힘든 사태다. 대단히 양상이 달라졌다. 최근의 집단적 폭력과 사회적 분열은 과거와는 또 다른 위협으로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도전으로 봐야 한다.
-극단적 콘텐츠와 가짜뉴스, 광고 수익을 노린 자극적 영상이 넘쳐나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탄핵으로 확인된 몇 가지가 있다. 대통령까지도 새로운 미디어의 중요한 수용자였다는 점이다. 매몰되기까지 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정도다. 호응하는 일부 세력이 극단화하고 극단세력 속에서 전위부대로서의 유튜버들이 있었다. 이 현상을 비난하거나 찬동하려는 게 아니다. 제도상 현실적으로 들여다보고 이것을 그대로 놔두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면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 등 그런 게 당연한 수순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욕 만하고 있다. (극우 유튜버 등이) 사익을 추구해서인지 등 깊이 연구해봐야 할 문제다. 진상부터 제대로 알고 봐야 한다. 원인이 중첩적으로 있다고 본다. 근원의 근원을 살피고자 하는 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언론인 김중배 선생이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
-AI가 산업 전반에 빠르게 도입되고 있는데.
△기계 속에 유령이 생긴 것 같다. 그 공생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지만 우리 후배들은 해야 한다.
-종이신문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보나.
△과거엔 언론이라고 해봐야 신문밖에 없었다. 시민 독자가 신문사에 전화해 이런 내용이 맞느냐고 직접 묻기도 했다. 현재는 신문 구독률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날로그 신문만의 감각과 문화적 생명력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잡지보다 심층적이고 색깔 있는 역할 하면서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신문이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은 전자책도 있지만 신문을 읽어야 좀 안도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런 미덕이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에 대한 미덕은 아직 남아 있지 않나. 한번은 술을 한잔 마시고 방에 들어가서 서재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다 죽은 사람들 책이더라. 죽은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는 게 책이다. 몇천 년 전과도 대화할 수 있다. 책이라는 미디어의 힘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트럼프 관세 강풍 영향 크다고 한다. 수출에 치명적이니 큰 문제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새로운 문명 양상 등에 적절히 대응을 못하면 다시 개도국으로 퇴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변동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긍정적인가. 문제가 있는가. 이런 논의를 해야 하는데 안 하니 문제다.
-후배 언론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대가 변하면서 언론인의 역할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민주시민의식, 공론장에 대한 책임감, 꾸준한 공부와 성찰이 필요하다. 언론의 객관성과 통찰력,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메시지는.
△광장에 나온 사람들을 봐라. 모두 비분강개해서 나왔지만 표현을 스마트하게 하더라. 나는 희망이라는 말을 안 쓴지 오래됐다. 너무 헐값으로 쓰는 것 같고 기약도 없어서. 젊은이가 낫다. 절망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언론인 김중배 선생 △1934년생 △전남대 법학과 학사 △한국일보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장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장·대표이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석좌교수 △MBC 사장 △참여연대·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광장 공동대표 △‘뉴스타파 함께재단’ 명예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