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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으로 어르신들 웃음 드리려 전국 요양시설 찾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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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충남 서천군 노인요양시설에서 음악 봉사를 마친 김호겸씨. 천경석 기자

지난 9일 충남 서천군 노인요양시설에서 음악 봉사를 마친 김호겸씨. 천경석 기자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시작한 색소폰이 이제는 어르신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같아요. 제가 세상에서 받은 혜택을 어르신들께 돌려드리는 것이 사명이라 생각해서인지, 봉사를 마치면 숙제를 해낸 느낌입니다. 기쁜 숙제죠.”



지난 9일 충남 서천군 노인요양시설. 휠체어를 타거나 보행 보조 기구를 끌고 모인 스무명 남짓 어르신들 앞에 한 남성이 섰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중년의 남성은 익숙한 듯 음향 장비를 늘어놓는다. 스피커를 설치하고, 반주기를 세우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색소폰을 꺼내 들고 연주를 시작한다. 이제 인생 2막을 시작한 김호겸(61)씨 이야기다.



“서천군이 제 고향이에요. 어르신들 보려고 서울에서 내려왔어요.”



‘고향의 봄’이나 ‘과수원 길’ 같은 동요부터 ‘소양강 처녀’, ‘안동역에서’, ‘아모르파티’ 같은 트로트까지. 구성진 멜로디에 어르신들은 연신 박수를 보내며 고개를 흔든다. 노래 중간중간 전문 사회자처럼 능숙한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색소폰을 연주하는 그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묻어나왔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 나긋한 목소리로 곡을 설명하고, 호응을 끌어낸다.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익숙한 노래를 들어서일까, 눈물을 흘리는 어르신도 있다.



프로농구단 사무국장과 기업 홍보 담당, 그리고 한국인삼공사 대외협력실장까지. 인생 전반기 대부분을 홍보맨으로 일했던 그가 은퇴 이후에는 부인과 캠핑카를 직접 몰고 전국 각지의 요양시설을 찾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악기를 처음 배운 계기가 우리 부모님 칠순 잔치 때 자식들이 장기자랑을 하나씩 하자고 해서 시작했던 거에요. 20년 정도 됐죠. 아버지 어머니 즐겁게 해드리려고 시작한 건데 이제 어르신들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어서 좋지요.”





김호겸씨가 지난 9일 충남 서천군 노인요양시설에서 음악 봉사를 하고 있다. 천경석 기자

김호겸씨가 지난 9일 충남 서천군 노인요양시설에서 음악 봉사를 하고 있다. 천경석 기자


음악 봉사가 그에게 생소한 일은 아니다. 첫 음악 봉사는 2012년으로 거슬러 간다. 교회 모임에서 봉사를 하자는 제안이 나와 시작한 봉사가 시작이다. 이후에는 김씨와 아내, 아들 둘 가족 모두가 경기 성남시에 있는 한 요양원을 매달 찾는 것으로 봉사를 이어갔다.



2년 전 현업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아내와 캠핑카를 빌려 전국을 돌며 봉사에 나서고 있다. 봉사 계획도 은퇴를 앞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은퇴 2∼3년 전부터 계획을 세웠다. 회사에 다니며 시간을 내 대형면허와 견인면허를 땄다. 아내는 실버인지놀이지도사 1급과 동화구연 아카데미 과정도 밟았다. 어르신들께 맛있는 음식도 대접해드리고 싶어 양식조리기능사와 중식조리기능사도 취득했다. 김씨의 아내는 미용사 국가기술자격증을 얻어 미용 봉사도 함께한다.



“색소폰 공연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음악 봉사에요.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도 많이 했죠. 시행착오도 많았는데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프로농구단 사무국장 등 지내다
2년 전 은퇴하고 음악봉사 열정
부모님 칠순잔치 위해 배운 색소폰
요양원 등 찾아 130번 넘게 연주
아내는 음식 대접하고 미용봉사





“주변에서 재취업 이야기 하지만
한살이라도 더 젊을 때 하려고”





김씨는 올해 3월에는 경기 남부를 방문했고, 4월에는 충북, 5월에는 충남의 요양시설을 순회하고 있다. 앞으로의 일정도 계획해뒀다. 경기 북부와 강원도, 경남, 제주, 전남, 전북, 경북까지. 광역시를 제외하고 1년에 10개월간 봉사를 다니는 것이 목표다. 이날이 26번째 캠핑카 봉사 유랑이자 131번째 봉사였다.



봉사에 이렇게 열심이니 “돈 벌어 놓은 게 많나 봐요”라며 오해를 사기도 한다. “돈이 많아 봉사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은퇴한 지 지금 2년 됐거든요. 주변에서는 재취업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 그렇게 일하고 나면 봉사할 시간이 없잖아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힘이 있을 때 봉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캠핑카 봉사를 하다 보니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도 앞선단다.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 지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인 것 같아요. 유튜브를 통해 봉사하는 모습을 알리는 것도 봉사를 계속하기 위한 마음이기도 해요.”



김호겸씨가 지난 9일 충남 서천군 노인요양시설에서 음악 봉사를 하고 있다. 천경석 기자

김호겸씨가 지난 9일 충남 서천군 노인요양시설에서 음악 봉사를 하고 있다. 천경석 기자


130번 넘게 음악 봉사에 나섰고, 본격적으로 캠핑카 유랑에 나선 것도 20번이 훌쩍 넘었지만 집을 나설 때마다 긴장되기는 매한가지다. 봉사 장소에 도착해 어르신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에서야, 그 긴장감은 모두 사라진다고 한다. “내일 또 오라는 분도 계시고, 날마다 오면 좋겠다는 분들도 계시죠. 봉사를 마치면 와서 제 손을 잡아주시기도 하는데요.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봉사 뒤 어르신들께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세상 모든 걱정 잊으시고,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르신들 모두 자식 걱정하느라고 사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거 하지 말라고 하거든요. 자식 걱정하지 마세요, 자식들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그냥 어르신들만 생각하시라고요. 환하게 웃는 그 모습 그대로 건강하시면 좋겠어요.”



천경석 기자 1000pr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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