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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초학력 공개” 대법 판결, ‘학교 줄세우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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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개 학부모단체 및 교원단체로 구성된 서울교육단체협의회가 지난 2023년 3월9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초학력보장지원조례 강행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조례안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제공.

29개 학부모단체 및 교원단체로 구성된 서울교육단체협의회가 지난 2023년 3월9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초학력보장지원조례 강행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조례안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제공.




대법원이 ‘과열 학력 경쟁’ 등을 이유로 교육계가 반대한 서울 지역 학교별 기초학력 결과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명박 정권이 도입했다가 심각한 부작용으로 폐지한 제도를 국민의힘이 장악한 서울시의회가 재추진한 것에 합법성을 부여한 것이다. 사법부가 ‘교육 역주행’이라는 비판을 받는 제도에 힘을 실어준 꼴이 됐다. 무책임한 거 아닌가.



대법원 1부는 15일 서울시교육청이 시의회를 상대로 낸 조례무효 소송에서 시의회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 학생들은 매년 3~4월 학교장 판단으로 기초학력 진단을 받는데 지금까진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2023년 3월 국민의힘이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가 성적을 외부에 공개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조희연 전 교육감은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냈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조례 집행 효력이 정지된 상태였다. 이번 판결로 학교별 성적이 외부에 공개되게 됐다.



대법원은 ‘학력 줄세우기’ 우려에 대해 “개별 학교를 익명 처리하면 (줄세우기를)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교육계 현실을 잘 모르는 소리다. 어느 학교인지 드러나는 것과 상관없이 학교장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학교는 학력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찾아서 도움을 주기보다 전체 시험 성적을 올리는 데 집중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연구 목적용’이었던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학교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하자 온갖 편법이 난무했다. 교사들이 시험 감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정답을 유도해주거나, 운동부·특수학급·다문화가정 등 성적이 낮은 학생은 아예 응시하지 못하게 한 학교도 있었다. 성적에 따라 학생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망신을 주는 등의 비교육적 행태가 벌어졌다.



‘시험 점수’만 올랐을 뿐 실제 학업 수준이 오른 것도 아니었다.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성적이 오른 고교의 수능시험 성적을 분석해보니 오히려 국어와 수학·영어 성적이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 제고 효과는 미미하고 부작용은 크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은 스스로 ‘열등생’으로 낙인찍고 학업을 포기하다시피 한다. 서울시의회가 조례를 제정하자 진단평가 대비반 등 사교육 시장이 들썩였다. 사법부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어떤 제도나 정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 스스로 목표로 삼은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에 기여하는 법원”에도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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