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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자발적 가난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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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농가 주택에서 옷을 정리하는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 전 우루과이 대통령. 몬테비데오 로이터=연합뉴스

농가 주택에서 옷을 정리하는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 전 우루과이 대통령. 몬테비데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별세한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 전 우루과이 대통령에겐 물욕이라곤 없었다. 대통령 관저를 노숙인에게 내주고 허름한 농가에서 집무실로 출퇴근했고, 월급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관용차 대신 20년 넘은 소형 승용차를 몰고 다녔으며, 퇴근 후엔 ‘추리닝’을 입고 텃밭과 화단을 가꿨다. 그를 만나려면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집 주변 진흙밭을 건너야 했다.

□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렸지만, 무히카는 그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청렴 과시에 관심이 없어서였다. “삶엔 가격표가 없기에 나는 가난하지 않다. 가난한 사람이란 많은 것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처럼, 부의 집중과 소비주의에 저항하는 게 삶의 철학일 뿐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군부 독재에 맞서다 12년간 투옥돼 끔찍하게 고생했다. 그러나 부와 권력을 거머쥐어 세상에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는 대신, ‘무히카적 세계관’을 완성했다.

□ 2015년 퇴임한 무히카의 지지율은 대통령 취임 때보다 약 10%포인트 오른 65%였다. 청빈 때문만은 아니었다.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준 덕이다. 성장과 분배에서 모두 실적이 좋았고, 임신중지·동성애 합법화, 재생에너지 확대 등 개혁 의제도 관철시켰다. 가난은 지도자의 자질일 수 없다. 재산이 적은 순서로 도덕적인 것도 아니다. ‘권력을 치부 수단으로 쓰지 않겠다, 가난한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겠다, 특권의식으로 눈을 가리지 않겠다…’ 무히카의 자발적 가난은 그런 뜻이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대선 후보들의 재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31억 원,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11억 원,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15억 원,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25억 원 등이다. 재산 형성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액수만으로 후보들의 자질을 판별할 순 없다. 중요한 건 가난과 부에 대한 철학이다. 그러니 공약을 꼼꼼히 따져 보고 정책토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선거 기간엔 카메라 앞에서 소탈함을 과시하다가도, 권력을 쥐고 나면 다이아몬드 목걸이 수수니, 자녀 생활비 수수니 하는 의혹을 사는 게 한국 대통령들의 현실이니 더욱 그렇다.

최문선 논설위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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