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구름많음 / 0.0 °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뼈 자르는 아픔도 참는다"…키 크는 수술의 역사 [의사와 함께 펼쳐보는 의학의 역사]

한국일보
원문보기

편집자주

아프면 병원에 가고, 병원에 가면 병이 나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한 전제가 된 이 문장이 과연 당연한 사실이 된지 얼마나 되었을까. 마취제도 진통제도 항생제도 없던 시절, 세균과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모르던 시절, 위생과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 머나먼 옛날이 아니라 기껏해야 100년, 200년 전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무지의 시대에 어떻게든 살리려 애썼던 의사들, 그리고 그 의사들에게 몸을 맡겨야만 했던 환자들의 이야기.


원시인도 공유한 '큰 키'욕구
부작용 딛고 확립된 수술법
다리 기형 교정으로도 사용


삽화=신동준

삽화=신동준


‘키 컸으면’이라는 노래와 개그 프로그램이 있었을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큰 키에 대한 열망은 어마어마하다. ‘키 크는 수술’도 성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등 거의 모든 나라가 그렇다. ‘키가 크면 좋겠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인류는 언제부터 큰 키를 열망했을까.

원시시대에도 키가 크면 생존에 유리했다. 높은 곳의 과일을 딸 수 있고, 힘이 셀 확률도 높아 사냥에서도 유리했다. 성경에도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누가 12:25)라는 말씀이 나온다. 당시 유대 민족들 사이에서도 큰 키가 선호됐다는 얘기다. 진시황릉을 지키는 병마용 키도 평균 184㎝라고 하는데, 당시 중국인 평균 키는 이보다 훨씬 작았다. 역시 큰 키를 원했다는 얘기다. 키에 대한 욕망은 ‘생긴 것’이 아니라 사실 ‘역사와 함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두피를 절개해 두개골과 두피 사이에 실리콘을 넣어 키를 키우는 수술. 스페인 언론 elPeriodico 갈무리

두피를 절개해 두개골과 두피 사이에 실리콘을 넣어 키를 키우는 수술. 스페인 언론 elPeriodico 갈무리


본격적으로 ‘키 크는 수술’을 알아보기에 앞서, 국소마취로 할 수 있는 키 크는 수술도 있다. 루이 드 라 크루즈(스페인) 박사가 고안한 수술로, 최대 5㎝ 정도 더 클 수 있다고 한다. 두피를 절개해 두개골과 두피 사이에 실리콘을 넣는 방식인데, 모양이 썩 좋지는 못하다.

다시 돌아와서. 키 크는 수술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1905년 이탈리아 외과의사 알레산드로 코디빌라(1861~1912)가 최초로 도전했다. 사람의 몸통을 묶어 고정하고 팔다리를 따로 묶어서 도르래를 돌리는, 언뜻 중세시기 고문과 비슷했다. 더 자세히 보면, 일단 마취제를 투여하고 발과 발목에 못을 박아 다리를 잡아당긴 뒤 석고 캐스트로 굳힌다. 보고에 따르면 이 방법으로 무려 8㎝까지 연장했다고 한다. 당연히 여러 문제가 생겼다. 신경이 끊어지거나 늘어나면서 경련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았고, 근육이 찢겨서 위축되는 경우도 많았다. 또 관절이 빠져, 회복이 안 되기도 했다. 수술대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혈관이 늘어나다가 찢어지면 사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쨌든 키가 늘어나긴 했기에, 다른 사람들도 도전에 나선다. 루이 옴브레단(1871~1956)이라는 프랑스 소아과·성형외과 의사다. 유방 절제술 후 대흉근 피판을 통한 재건술을 최초로 시도해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마냥 실력 없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다. 옴브레단은 뼈를 자른 후, 외부 고정장치를 이용해 점진적으로 연장하는 방법을 최초로 시도했다. 문제는 뼈에 고정하는 핀이 약해서 그냥 골절돼 버리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 뼈에 이물질을 꽂고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 보니 감염도 잦았다.


비토리오 푸티(1880~1940)란 이탈리아 외과 의사가 이를 개선한다. 코디빌라의 제자이기도 한데, 옴브레단의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뼈 사이에 스프링을 넣고 강력한 핀을 두 군데에 박아서, 스프링의 힘으로 뼈를 조금씩 밀어내는 방식의 점진적 연장술을 시도했다. 대퇴골을 한 번에 ‘뚝’ 자르는 게 아니라, ‘Z’자 형태로 골절시켜 좀 더 자랄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쇼크사가 반복됐다. 근육이나 신경, 혈관이 손상됐고, 감염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아우구스트 비어(1861~1949)라는 독일 의사는 골막까지 다 잘라버리는 바람에 그냥 ‘다리 잘린 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1920년대의 일이다. 1970년대에 하인츠 바그너라는 독일 의사는 합성 사진을 이용해 ‘당신이 나한테 수술을 받으면 이렇게 된다’는 식으로 마케팅을 했다. 문제는 수술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때문에 수술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외부 고정 장치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했고, 감염 등 합병증도 많았다.

어려운 수술을 드디어 정립한 사람이 구소련의 가브릴 일리자로프(1921~1992)다. 두 개의 종아리뼈 중 정강이뼈를 절골한 후, 외부에서 고정쇠를 박아 수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퇴골 절골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키 성장도 안정적이었다. 상하로 고정하는 방식은 같았으나 6-스트럿(헥사포드) 원형 고정 장치를 통해서 다평면, 즉 3D로 교정하면서 자랄 수 있게 만들었다. 키가 크는 것만이 아니라, 기형을 교정하는 데에도 탁월한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요새는 뼈를 안쪽에서 고정하는(내고정) 방식도 개발됐는데, 이 수술은 재활 및 성장까지 단 3개월이면 끝난다. 과학이 끝내 키도 클 수 있게 만들어 준 셈이다.

이낙준 닥터프렌즈 이비인후과 전문의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이준석 공천개입 의혹
    이준석 공천개입 의혹
  2. 2김주하 가정 폭력
    김주하 가정 폭력
  3. 3강민경 주사이모 의혹
    강민경 주사이모 의혹
  4. 4모범택시3 장나라
    모범택시3 장나라
  5. 5고 윤석화 노제
    고 윤석화 노제

한국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