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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다, 존재가 끝나는 날이 될지라도…

조선일보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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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경림 시인 1주기 앞두고
유고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출간
2014년 1월 14일“나이 들면 체념이 많아지다 보니 언어가 진솔해지더라”며 지난 몇 해 사이 자주 꾼 꿈을 꾸밈없이 노래한 신경림 시인./이덕훈 기자

2014년 1월 14일“나이 들면 체념이 많아지다 보니 언어가 진솔해지더라”며 지난 몇 해 사이 자주 꾼 꿈을 꾸밈없이 노래한 신경림 시인./이덕훈 기자


‘나는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끝내는 날이 될지라도.’(시 ‘소요유(逍遙遊)’ 중에서)

작년 5월 타계한 고(故) 신경림 시인의 1주기를 앞두고 유고 시집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창비)가 출간됐다. 대장암 재발로 생사를 오가던 시인의 마지막 말은 “글 쓰고 싶다. 글 써야 한다”는 중얼거림이었다. 그가 남긴 시 60편을 유족이 출판사에 전했다. 고인과 각별했던 도종환 시인이 시집을 엮었다.

유고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왼쪽)와 ‘농무’ 특별 한정판. /창비

유고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왼쪽)와 ‘농무’ 특별 한정판. /창비


서울 서교동에서 14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도종환 시인은 “한결같다”고 했다. “거창한 것을 내세우거나 허세를 부리거나 하지 않고, 작은 것, 하찮은 것, 낮은 데 있는 것을 향한 연민과 애정이 한결같다. 현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에 힘을 실으려고 한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초기부터 유작까지 하나의 결을 간직한 시를 썼다.”

시인은 보는 사람이다. 고인은 생의 끝자락에서도 새롭게 보았다.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허공이 보인다’(‘허공’). 이승과 저승을 오간 순간도 있었던 듯하다. ‘할아버지, 하고 손녀딸이 부르는 소리/ 멀리 그 소리 들려 눈을 뜨면/ 창밖에 환하고 둥근 달이 떠 있다.’(‘병중’). 차남 신병규씨는 “마지막에는 (시를) 많이 못 쓰셨다. 시 작업을 하려고 생각하다 보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머리 아프신데 왜 쓰시냐고, 가족들은 시 쓰는 것을 말렸다.”

유고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출간 간담회에 참석한 도종환 시인(왼쪽)과 차남 신병규씨. /연합뉴스

유고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출간 간담회에 참석한 도종환 시인(왼쪽)과 차남 신병규씨. /연합뉴스


시인은 손주를 각별히 아꼈다. 시에서도 그 마음이 느껴진다. ‘손자를 데리고 장어를 먹으러 간다 (…) 다시 병원 갈 날을 두려워하면서./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내 초라한 손을 펴보면서.’ 아들 병규씨는 “명절에 전화하셔서 ‘코로나니까 오지 말아라’ 하시기에 ‘예’ 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더니 ‘잠깐, 애들은 보내야지’ 하셨다(웃음).”

할아버지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라면 어떨까? 고인의 가족들은 재미난 경험을 하곤 했다. ‘가난한 사랑의 노래’ ‘농무’ 등 신경림의 대표 시는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시인의 손녀는 중학 시절 시험에 할아버지의 시가 출제됐는데 다 틀려온 적이 있다. 시험지를 가져와 할아버지와 다시 풀어봤지만, 정작 시인도 문제를 맞히지 못했다고 한다.


유고 시집에 이어 고인의 첫 시집이자 창비 시선(詩選)의 첫 번째 시집인 ‘농무’ 특별 한정판도 출간한다. 1주기 당일인 22일엔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신경림 문학제가 열린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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