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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기에 광속으로 지나가자, 찰나에 금으로 변했지만…

조선일보 곽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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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근의 나는 누구?]
CERN 연구진 논문 발표
너무 흔해 흙수저와 다름 없는 나는 항상 금수저를 꿈꿔왔다. 요즘 금은 한 돈(3.75g)의 반의 반에 불과한 1g 돌반지도 귀할 정도로 몸값이 치솟았다. 금으로 하루 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꿈을 이루고자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입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 충돌시키는 ‘대형 강입자 가속기(LHC)’가 있다. 그 안에 내 몸을 맡겼다. 연금술사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가속기 안에서 광속(光速)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됐다. 그곳에서 수많은 내가 서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 강력한 전자기장이 내 몸을 뒤흔들었다. 갑자기 내 몸(원자핵)에서 양성자 3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그 수만큼 나의 원자번호는 82에서 79로 줄어들었다. 아! 원자번호가 79인 원소가 무엇이던가? 바로 금(Au)이다! 내 평생 소원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도 짧았다. 나는 곧바로 산산이 부서져 파편으로 흩어졌다. 반짝였던 찰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그래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금이 되는 순간’을 살았기 때문이다. “한번 금은 영원한 금!”이라고 구호를 외치며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정답은 납(Pb).

CERN의 연구진이 지난 7일 국제 학술지 ‘피지컬 리뷰 C’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5~2018년 가속기 실험으로 납 원자핵 약 860억개가 금 원자핵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거의 빛의 속도로 서로 스쳐가는 순간 양성자가 이탈해 납이 금으로 바뀐 것이다. 다만 금이 됐던 양은 1조분의 29g에 불과했다. 납이 금이 된 순간은 약 1마이크로초(100만 분의 1초)였다.

앞서 원자번호 83의 비스무트(Bi)가 이번처럼 금이 순간적으로 된 적이 있다. 미국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는 1980년 입자 가속기로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비스무트의 양성자 4개를 이탈시켰다. 이때 원자번호가 79(=83-4)가 돼 금으로 바뀌었다.

[곽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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