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는 구글이 이용자의 생체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하자 “주민 수백만명이 피해를 당했다”며 주민들을 대신해 소송에 나섰다. 2022년 10월 시작해 2년 넘게 진행된 법정 다툼은 최근 구글이 14억달러(약 1조9593억원)의 배상금 지급에 합의하면서 마무리됐다.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은 “기술 기업에 ‘우리 권리와 자유를 팔아넘겨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최근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보인 태도는 사뭇 대조적이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9일 국정 핵심과제 국민 브리핑에서 “SK텔레콤이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니다. SK텔레콤도 굉장한 피해자”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이 해킹 공격을 막지 못해 가입자들의 유심(USIM·가입자식별장치) 정보를 유출하는 사고를 냈는데도 말이다.
2500만명(알뜰폰 포함)의 가입자를 보유한 국가기간통신사업자에서 대규모 사이버 침해 사고가 벌어졌다. 그런데도 유 장관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문제에 대해 판단을 유보했다. 그는 “위약금은 (SK텔레콤의) 사운이 걸린 정도의 문제라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라면서 오는 6월 말 나올 민관합동조사단 결과를 보고 의견을 개진하겠다고 했다. 보상금 지급 역시 “오롯이 SK텔레콤이 결정할 문제”라며 정부 개입에 선을 그었다.
과기정통부가 중요 사안에 판단을 유보하는 사이, 국민들은 ‘복제 유심’ 등 보안 사고 피해에 노출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 원로학자는 “(SK텔레콤 해킹 사고는) 과기정통부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부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곳인데, 기업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잘못된 일은 바로잡고 잘하는 분야는 육성해 국민과 기업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공지능(AI) 강국 달성을 목표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과기정통부와 AI 기업으로 전환을 추진 중인 SK텔레콤 모두에게 사이버보안은 가장 기본이 되는 역량이다.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기업을 ‘피해자’로 보는 시각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정두용 기자(jdy2230@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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