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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노예제를 대체한 인종 차별 제도와 이념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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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브라질 노예제 폐지- 2

브라질 노예제 폐지 133주년이던 2021년 5월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항의 시위. EPA 연합뉴스

브라질 노예제 폐지 133주년이던 2021년 5월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항의 시위. EPA 연합뉴스


(이어서) 19세기의 ‘자유 자궁법’과 ‘육순법’ 등은 법의 취지와 별개로 굳건하던 브라질 노예제의 아성에 치명적인 균열을 만들어냈다. 16세기 이래 끊임없이 이어져온 흑인 노예들의 저항과 반란도 격렬해졌다. 18세기 말 프랑스 식민지 아이티(생도맹그)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노예제가 폐지된 게 기폭제였다. 일부 개혁교회와 영국 정부 등의 종교-외교적 압력도 커져갔다.
1888년의 ‘황금법’은 마지막까지 대농장주의 ‘노예 재산권’을 옹호하던 제국 왕실의, 떨떠름한 포기 선언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 왕궁 바깥에서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주 이자벨(Isabel)이 서명한 법안은 단 2개 항 18단어로 이뤄진 짧고 퉁명스러운 법이었다.
"1항 : 오늘부터 브라질의 모든 노예제가 폐지된다. 2항: 이에 반하는 모든 법-조치들은 폐지된다."
노예 재산 상실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기대했던 대농장주들마저 왕실에 등을 돌렸다. 이듬해 군사쿠데타로 제정이 붕괴하고 공화정이 시작됐다. 라틴아메리카 최대 국가 브라질의 5월 13일은 노예제 종식 기념일인 동시에 정치체제 변혁의 기점이 된 날이다.
하지만 왕실도 공화정부도 노예제 폐지 이후의 국민 통합에 필요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교육과 토지, 고용 기회 등 안전망 없이 하루아침에 자유민이 된 당시 기준 약 70만 명의 해방 노예는 곧장 극빈자로, 노예 시절보다 못한 실질적인 계약 노예로 주변화됐다. 법적 신분제를 대체하기 위한 인종 차별 이데올로기 공세도 격렬해졌다. 공화정부는 유럽계 백인을 적극 수용하는 이른바 ‘백색화 정책’으로 노예 출신 흑인 및 혼혈인의 수적 열세 구도를 강화했다. 아시안계도 ‘2등 백인’으로서 브라질 이민 정책의 수혜를 입었다.
근년 브라질의 아프리카계 및 혼혈 인구는 전체의 53%를 차지한다. 하지만 교도소 수감자의 약 3분의 2, 극빈 계층의 76%가 그들이다. 브라질 노예제의 여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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