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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관세는 자해행위”… 美 산업계·싱크탱크 한목소리

조선비즈 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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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A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 수입 관세 부과가 자국 산업 보호는커녕, 오히려 기술 경쟁력과 경제 성장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반도체 산업계를 대표하는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워싱턴의 주요 기술 정책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반도체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역설적으로 투자를 위축시키고, 종국엔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뒤흔들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SIA와 ITIF는 각각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에 반도체 관세 부과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20여쪽 분량의 의견서를 지난 7일 제출했다. 이는 상무부가 반도체 및 장비 수입에 대한 국가안보 조사를 실시하면서 산업계와 전문가들에게 공개 의견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 기관을 비롯해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국내외 주요 반도체·IT 기업들 역시 미 정부에 우려를 담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세 1%에 제조비 0.34%↑… 美 생산 유인 사라져”

SIA와 ITIF가 제출한 의견서에는 공통적으로 반도체 관세 부과가 오히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제조업 부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비판이 담겼다. SIA는 반도체 관세가 1%만 올라가도 반도체 팹(제조공장) 건설 비용이 평균 0.34% 증가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미 아시아 대비 미국 내 제조 비용이 30~50% 더 높은 상황에서, 수입 장비와 소재에 관세가 붙으면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유인은 약화할 것이란 뜻이다.

ITIF도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예로 들며, 고율 관세가 미국의 제조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UV 장비 1대엔 45만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고 이 중 대부분은 해외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부품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원가가 급격히 상승해, 미 정부가 의도한 반도체 자급 달성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ITIF는 “전문화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는 순간, 미국의 팹 전략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고 했다.

반도체 관세는 단순히 칩 생산 비용만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전략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위협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자동차 1대엔 반도체 1000~3000개가 들어가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는 34만개 이상의 칩이 사용될 정도로 반도체는 주요 산업의 기반이다. 관세로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 자동차와 서버, 의료기기 등의 가격이 줄줄이 인상되고, 이는 미 제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ITIF는 꼬집었다. SIA도 관세로 칩 가격이 1달러 오르면 최종 제품 가격은 3달러 이상 인상돼야 기존 마진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반도체가 필수적인 AI, 국방, 의료 등 주요 산업에서 고비용과 부품 조달 차질로 기술 우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다.

◇ “美 기업들, 내수 시장에 갇힐 최악 가능성도"

수출 타격도 불가피하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매출의 약 70%는 해외에서 발생하는데, 관세가 부과되면 다른 나라들도 보복 관세로 맞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ITIF는 “이른바 ‘거울 관세’가 도입되면 미국 ICT(정보통신기술) 수출은 연간 560억달러(약 79조원)의 손실을 볼 수 있다”며 “미국 기업들이 내수 시장에 갇혀 ‘갈라파고스 산업’이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SIA와 ITIF는 이러한 관세 중심 접근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라고 단언했다. 대신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의 세액공제 연장, 인허가 간소화, 기술 인력 양성 등 정책이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 제조 확대’에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ITIF는 “미국 내 반도체 제조 확대를 명분으로 관세를 도입하면, 오히려 그 목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관세는 비용과 혼란을 가중하고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기술 혁신마저 마비시키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전문가들과 산업계의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발 반도체 관세는 이르면 오는 6월 말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는 트럼프가 반도체 관세에서 ‘당근과 채찍’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성숙 공정 기반의 반도체가 1차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고, 첨단 공정 칩은 관세 할당제 등을 통해 미국 내 생산능력이 확보된 후 점진적으로 시행할 것이란 예측이다.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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