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일선 부대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장련성 기자 |
남성 군인들이 생활관에 머물 때나 새벽 불침번 근무 중 합의하에 성적 행위를 하더라도 ‘군기(軍紀) 침해’로 보고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정되지만, 군기 확립이 요구되는 생활관이나 근무 시간에 성행위를 하는 것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22년 “동성 군인이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성행위를 했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한 후, 군인 간 성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처벌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군형법상 추행죄로 기소된 전직 군인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지난달 24일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0년 7~9월 충남 논산의 한 육군 부대에서 함께 근무하던 군인 B씨와 유사 성행위를 한 혐의로 이듬해 기소됐다. 문제 된 행위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A씨와 B씨가 근무 시간이 아닐 때 막사 내 격리 생활관에서 성적인 접촉을 한 것이다. 두 번째는 A씨가 새벽에 불침번을 서던 B씨와 화장실에서 유사 성행위를 한 행위다.
검찰은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 군형법 92조의6(추행)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쟁점은 두 사람의 성적 행위가 군형법상 ‘추행’에 해당하는지였다. 과거 법원은 남성 군인 간의 성적 행위·접촉이 적발되면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위법하다고 보고 처벌해왔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22년 4월 영외 독신자 숙소에서 합의하에 성행위를 한 남성 군인들에게 무죄 취지 판결을 내리면서 변화가 생겼다. 당시 전원합의체는 “동성 군인 간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등 군 내부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는데, 이후 군기 침해라는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지 두고 논란이 있었다.
2022년 4월 21일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입정하고 있는 모습.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진 동성 군인 간 성행위는 군기 침해가 아니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뉴스1 |
1심은 전원합의체 판례 변경 전 A씨에게 징역 4개월의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반면 2심은 2022년 11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생활관에서의 행위에 대해 “격리 생활관에서 따로 생활하면서 근무 시간이 아닌 때 이뤄져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고, 불침번 중 행위에는 “근무 시간은 맞지만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화장실 내에서 은밀하게 이뤄졌다. 임무 수행에 지장을 주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2심을 뒤집고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생활관은 군사 훈련 내지 집단적 단체 생활의 일부로 군율과 상명하복이 요구되는 공간이고, 불침번 근무 중인 군인은 엄연히 군사적 필요에 따른 임무를 수행 중인 상태”라며 “A씨와 B씨의 행위가 근무 시간이 아닌 때 이뤄지거나, 외부와 단절된 장소에서 은밀하게 이뤄졌다는 점에만 주목해 군기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본 2심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했다.
대법원은 앞선 전원합의체 판례를 인용하면서 “동성 군인 간 자발적 성행위라 하더라도, 군기 및 군율의 확립·유지 요청이 큰 공간이나 상황에서 이뤄졌다면 군기를 침해하는 것으로 군형법상 추행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상명하복 규율 등 군조직의 특성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일부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동성 군인 간 성행위에 대한 군형법상 처벌 기준을 처음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극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