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이 4000개가 넘는다. 그 수만으로도 인력의 깊이와 시장의 폭을 가늠하기 어렵다.”
김형준(서울대 명예교수)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은 4월 15일 인터뷰에서 “중국은 딥시크(DeepSeek·深度求索) 등 자체 거대 언어 모델(LLM)을 개발하며 오픈AI조차 놀라게 할 만큼 AI 분야에서 한국을 앞섰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국내 대표 반도체 소자·공정 전문가다. 그가 이끄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사업은 AI 연산에 특화된 반도체 설계, 핵심 기술, 미세 공정 개발을 목표로 2020~2029년 총 1조96억원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이다. 10년 만에 재개된 조(兆) 단위 반도체 연구개발(R&D)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김형준(서울대 명예교수)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은 4월 15일 인터뷰에서 “중국은 딥시크(DeepSeek·深度求索) 등 자체 거대 언어 모델(LLM)을 개발하며 오픈AI조차 놀라게 할 만큼 AI 분야에서 한국을 앞섰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국내 대표 반도체 소자·공정 전문가다. 그가 이끄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사업은 AI 연산에 특화된 반도체 설계, 핵심 기술, 미세 공정 개발을 목표로 2020~2029년 총 1조96억원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이다. 10년 만에 재개된 조(兆) 단위 반도체 연구개발(R&D)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김 단장은 “레거시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은 고비용 구조에도 불구하고 정부 보조금에 기반해 자국 내 반도체 자급을 밀어붙이며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며 “시장 논리가 통하지 않는 중국식 정책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구조적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D램은 2~3년, 낸드 플래시는 1~2년 수준까지 좁혀졌다는 분석이다. 그는 “우리가 선제적으로 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언제든 추월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술 경쟁력 회복을 위한 해법으로 김 단장은 정부 R&D 체계 개편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중소벤처기업부가 제각각 개별 과제를 지원하는 현재 구조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R&D 예산과 전략을 통합 조정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AI, 양자 컴퓨터, 배터리 등 전략 기술 전반을 아우르는 범정부 차원의 ‘기술 전략 사령탑’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 서울대 재료공학, KAIST 재료공학 석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대학원 재료공학 박사, 현 서울대 명예교수, 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공학부), 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 전 서울대 교수 평의원회 의장, 전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 |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중국에 기술 추격을 허용한 배경은 무엇인가.
“한국의 GDP 대비 R&D 투자 비율(4.96%)은 세계 2위 수준이다. 그러나 투자액의 절대 규모는 미국이 한국보다 약 10배, 중국은 7~8배가 크다. R&D는 GDP 대비 비율보다 절대 금액이 중요한 분야다. 반도체만 놓고 봐도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이 미국은 18%, 유럽은 15%, 대만은 11%인데, 한국은 9%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조차 매출에 비해 R&D 투자가 다른 나라보다 많지 않다.”
반도체 초격차를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한국이 반도체 R&D에 인색했다는 게 충격적이다.
“반도체 산업은 오랫동안 대규모 국책R&D 사업의 공백 지대였다. ‘반도체 대기업은 정부 지원 없이도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고, 기업은 수익성 있는 분야에만 투자를 집중했다. 그 결과 팹리스(반도체 설계)나 패키징 등 미래 기술은 소외됐다. 대형 과제가 사라진 이후 대학의 반도체 전공 교수도 디스플레이, 태양광, 나노 등 다른 분야로 이동했다. 반도체 개발 인력 부족이 심각해진 배경이다. 정부 R&D가 장기 전략보다 패션 유행을 좇는 방식으로 운영돼, 긴 호흡이 필요한 반도체 등 핵심 기술 개발이 어려웠다.”
대학과 산업 현장 간 R&D 디커플링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대학교수 임용 기준이 논문 편수, 임팩트 팩터 위주로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네이처’ 등 유명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는게 유리해진다. 대학의 R&D가 기업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연구보다는 10년 뒤 상용화될 미래 기술 연구 위주가 된다. 기업이 대학 연구에 신뢰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최신 장비를 쓰는 기업이 열악한 환경에서 소규모 실험을 통해 추출된 대학 연구실의 데이터로는 양산 적용이 어렵다고 보는 것도 디커플링 원인이다. 기업과 대학 사이에 기술적·신뢰적 격차가 생기고, 공동 연구가 활성화되지 않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정부는 대학에 고성능 반도체 연구 인프라를 직접 구축해야 한다. 예컨대, 중국 베이징대는 메가바이트(㎆)급 실험 설비를 갖추고 있지만, 국내 대학은 4㎅(킬로바이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개별 대학이 아닌 공동 활용이 가능한 첨단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또 정부 부처와 협력하는 R&D 사업단이 대학과 연구 기관을 연결하고, 특정 소재나 소자 관련 연구 결과를 실제 칩(chip)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공용 설비를 제공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기업과 연계와 기술 검증이 가능해진다.”
R&D가 중소기업 지원으로 변질된 측면은 없나.
“현재 150여 개 영세 팹리스가 2억원 안팎의 정부 R&D 자금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는 수십억원이 드는 칩 제작비에 턱없이 부족해 대부분 운영비로 소진된다. 비효율을 줄이려면 유망 기업 20개 내외로 (지원 대상을) 재편해 집중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국 이공계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데, 현재 정부는 계약학과나 AI 대학원 확대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 대학원 하나 만든다고 해서 당장 인력이 배출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는 정원 채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공학과 기술 개발이 자부심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라, 기술 개발이 시대적 소명이자 적성에 맞는 도전이라는 인식이 형성돼야 우수한 인재가 이공계로 유입될 수 있다. 특히 퓨리오사AI나 리벨리온처럼 국내에서 실력과 열정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는 이공계 인재의 중요한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알려서 다음 세대에게 ‘기술로 승부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한국형 AI 산업 전략의 방향성은.
“AI 산업은 크게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첫째는 컴퓨팅 파워, 둘째는 데이터, 셋째는 모델이다. 중국은 막대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자원을 바탕으로 LLM을 학습시키고 있고, 풍부한 데이터와 자체 모델 개발 능력도 갖추고 있다. 반면 한국은 GPU 인프라가 부족하고, 대규모 데이터세트나 고도화된 모델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세 가지 요소 모두 약한 구조다. 이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가 현실적으로 전략적 우위를 노릴 수 있는 지점은 컴퓨팅 파워, 특히 연산용 칩 개발과 이를 활용한 인프라 구축이다. 국내 팹리스가 개발한 AI 반도체를 공공 컴퓨팅 센터 등에서 일정 비율 의무 구매하도록 해 초기 실적을 만들어주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설 자리를 확보하고, 후속 투자도 유치할 수 있다. 하드웨어부터 기반을 다지고,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와 모델 영역에서도 민간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의 ‘K엔비디아’ 논의 등 국영 AI 기업을 만들거나 운영하는 시도는 유효한 전략인가.
“정부가 AI 기업을 직접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작다. 정부 조직은 관료적 절차 등으로 인해 속도감과 유연성을 따라가기 어렵다. AI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정부는 직접 사업자가 되기보다는 인력 양성과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고 민간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조력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규제는 풀고 기반은 깔아주는 것이 정부의 본분이다.”
Plus Point
취약한 정부 반도체 R&D 투자삼성 파운드리 부진 유발했나
한국 반도체 R&D의 구조적 취약성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이 TSMC를 넘지 못하는 배경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형준 단장은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로직, 시스템 LSI 기능을 모두 갖춘 원스톱 서비스를 내세우지만, 고대역폭메모리(HBM)와 GPU를 결합하는 어드밴스드 패키징 기술이 부족해 엔비디아 등 고객사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익성 위주 경영으로 삼성전자가 패키징과 HBM 등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고, 파운드리 경쟁력 하락이 초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취약한 정부 R&D 시스템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게 김 단장의 시각이다. 미국은 국방부(DARPA), 에너지부(DOE) 등 정부 부처 주도로 반도체 설계, 패키징, 소재 분야까지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있고, 대만은 ITRI(공업기술연구원) 같은 공공 연구 기관이 대학, 산업계와 연계해 생태계를 조성해왔다. 김 단장은 “미국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게 된 것은 패키징 기술 개발, 팹리스 지원 등에 정부 R&D 투자가 지속된 덕분”이라며 “기업이 손대기 어려운 미래 기술은 정부가 먼저 길을 닦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코노미조선=정원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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