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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억압 이겨내고 노벨상까지…'흑인 최초 대통령'의 화합 정치[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김소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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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는 1994년 5월10일 흑인 최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사진=국제연합(EU)

넬슨 만델라는 1994년 5월10일 흑인 최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사진=국제연합(EU)



31년 전 오늘인 1994년 5월10일, 넬슨 만델라가 흑인 최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17세기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흑인 원주민들을 탄압하면서 관행이 돼 오랫동안 이어진 인종 분리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는 만델라 취임으로 막을 내렸다. 만델라는 취임 연설에서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사람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일이 결코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고 밝혔다.


비폭력 저항운동→무장투쟁…내란 혐의로 종신형 선고

만델라는 1918년 7월18일 남아공 동남부 한 시골 마을에서 추장 가문 후손으로 태어났다. 엘리트 교육을 받고 대학 생활을 하던 그는 1940년 학생회 활동을 하다 학교와 마찰을 빚고 정학 처분을 당했다. 마을로 돌아간 만델라는 정략결혼 할 위기에 처하자 이를 피해 무작정 요하네스버그로 상경했다.

법률가를 꿈꿨던 만델라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남아공대학(UNISA) 학사 과정을 이수했다. 흑인 지식층과 교류하면서 백인 정권의 흑인 차별 정책에 눈을 뜬 그는 1943년 민주화 투쟁의 중심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담했고, 이듬해 'ANC청년동맹'(ANCYL)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만델라는 1952년 전국적인 불복종 저항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민권운동의 지도적 인물로 부상했다. 애초 만델라는 간디의 비폭력·무저항주의를 받아들여 평화적 투쟁을 벌였지만, 1960년 3월 집회에 참석한 흑인 69명이 경찰 총기 난사에 학살되는 사건을 계기로 무장투쟁에 나섰다.


비밀 무장 조직을 꾸려 활동하다 체포된 만델라는 1964년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당시 남아공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교도소 로벤섬에 수용됐다. 죄수번호는 46664. 1964년에 수감된 466번째 죄수라는 의미로 이 숫자는 훗날 만델라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다.


옥중편지로 지지층 결집…27년 만에 석방 후 대통령 당선

아파르트헤이트 저항운동과 만델라 석방시위가 거세지자 남아공 백인 정부는 27년 만에 만델라를 석방했다. /사진=블룸버그

아파르트헤이트 저항운동과 만델라 석방시위가 거세지자 남아공 백인 정부는 27년 만에 만델라를 석방했다. /사진=블룸버그


만델라는 장기간 수감 생활로 어머니와 아들 장례식에 가지 못했고, 석회 채석장에서의 고된 노동으로 백내장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옥중에서도 전 세계 주요 인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아파르트헤이트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만델라 수감 이후 국내 아파르트헤이트 저항운동은 더 거세졌다. 1980년대 들어선 전 세계적으로 만델라 석방 운동이 전개됐다. 1982년 런던 웸블리 경기장엔 7만2000여 명이 모여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라'는 노래를 불렀고, 이 화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제사회 압력에 굴복한 남아공 백인 정부는 1990년 2월 만델라를 석방했다. 수감 27년 만이다. 만델라는 석방 연설에서 "난 여기 여러분 앞에 선지자가 아니라 천한 종으로 서 있다. 여러분의 영웅적인 희생 덕에 오늘 여기 서 있게 됐다. 그러므로 남은 내 인생을 여러분의 손에 맡긴다"고 말했다.


정부는 만델라를 석방하면서 ANC도 합법 조직으로 인정했다. 같은 해 7월 ANC 의장으로 취임한 만델라는 백인 정부 마지막 대통령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와 함께 인종차별을 끝낼 민주헌법을 제정했다. 두 사람은 이 공로로 199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1994년 4월 남아공에서 모든 인종이 참여한 첫 총선이 열렸다. ANC는 이 선거에서 과반 득표해 집권에 성공했고, ANC 의장이던 만델라는 그해 5월10일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만델라는 취임 연설에서 "우리는 결국 정치적 해방을 이뤄냈다. 우리는 아직도 빈곤과 박탈, 성차별 등 여러 차별에 묶여 있는 우리 국민을 해방시킬 것임을 맹세한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사람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일이 결코, 결코,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백인 사회를 향한 보복 대신 자신을 투옥시킨 사람을 내각에 등용하는 등 흑백 화합을 이끌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는 주변 권고에도 불구하고 5년 임기를 마친 뒤 199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정계 은퇴 후 에이즈 퇴치 운동…2013년 향년 95세로 타계

1999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만델라는 2004년 정계 은퇴를 선언, 이듬해부터 에이즈 퇴치 운동에 앞장섰다. /로이터=뉴스1

1999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만델라는 2004년 정계 은퇴를 선언, 이듬해부터 에이즈 퇴치 운동에 앞장섰다. /로이터=뉴스1


퇴임 후 만델라는 자선단체인 '넬슨 만델라 재단'을 설립했다. 2001년 전립선암 진단을 받은 그는 2004년 정계 은퇴와 함께 공직 관련 모든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뒤 어린 시절을 보낸 남아공 남부 쿠누로 거처를 옮겼다.

만델라는 2005년 둘째 아들을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AIDS)으로 잃었다고 밝히며 에이즈 퇴치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당시 그는 "에이즈 퇴치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만큼 중요하고도 힘겨운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만델라는 건강 악화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회 폐회식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30년 가까운 수감 생활로 얻은 폐 감염증이 2012년부터 재발해 병원을 오가다 이듬해 12월 자택에서 향년 95세로 타계했다.

ANC는 만델라 별세 후에도 '만델라당'으로 불리며 장기 집권하다 지난해 6월 30년 만에 처음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 높은 실업률과 극심한 빈부 격차, 정치권의 부정부패에 민심이 돌아선 것으로 해석된다.

김소영 기자 ks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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