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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현금봉투

조선일보 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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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나의 실버타운 일기] (11)
일러스트=유현호

일러스트=유현호


처음 입주했을 때 기존 회원들이 첫 인사말로 묻는 것은 나이, 집, 자녀 수입니다. 나이는 서열을, 집과 자녀 수는 상대방의 기본적인 배경을 짐작하기 위해서겠죠. 그 이상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 정도면 무난한 교류가 시작됩니다.

식당과 공동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마주치는 일 외엔 무관심한 일상 속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방문객이 왔을 때입니다. 방문객을 통해 멀리서나마 방문의 빈도, 가족 관계, 자녀들의 생활 수준이 한눈에 드러나면서, 무의식적으로 미묘한 반응의 기류가 순간 싸하게 지나갑니다. 호기심, 부러움, 아니꼬움, 불쾌감….

노인들 집단에서는 평소에 재력이나 자녀 자랑은 무언의 금기 사항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증손녀, 증손자인 어린이들이 오면 모두가 미소로 반깁니다. 복도에서 한 어린이와 마주치자 물어봅니다. “몇 살?” 어린이는 손에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쥐고 있습니다.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자손들이 건네준 현금 봉투는 버젓이 뽐내도 됩니다.

노인들이 선호하는 일등 선물이 현금 봉투임은 잘 알려진 사실. 그때 받는 현금은 온라인으로 보내온 돈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고 건네는 현금 봉투일 터. 그런데 현금 봉투가 점점 귀해지고 있습니다. 부모의 용돈은 물론 각종 축하금·부의금도 계좌번호에 손가락 몇 번으로 보내면 끝입니다. 번거롭게 봉투를 준비할 필요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현금 봉투는 돈 이상의 많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린이가 받는 세뱃돈은 확실한 재산이 되고, 노인들에게는 가장 반가운 효심입니다. 이곳에서 내가 도움을 받는 한 청년이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나는 노트 한 장을 뜯어 가위로 다듬고 축하의 말 한마디를 썼습니다. 그리고 아껴두었던 약간의 현금을 봉투에 넣어 아무도 안 볼 때 건넸습니다. “내 연애 편지.”

※필자(가명)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 실버타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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