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장(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무심코 놓치고 지나간 신간, 인터뷰에 담지 않은 후일담, 각종 취재기 등 이모저모. +α를 곁들여 봅니다.
[주의] 이 글은 김기태의 단편 ‘전조등’에 관한 약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최근 한 저녁 자리에서 김기태 소설가와 이희우 문학평론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게 어떤 조합이냐면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조합?
김기태 소설가는 작년 5월 출간한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문학동네)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는데요. 2022년 등단해 첫 소설집을 낸 신예 작가가 작년 본지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을 받는 이례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동인문학상은 한국 문단의 굵직한 중견급 이상 작가들이 주로 받아 왔거든요. 김기태 소설가에게 수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걸었을 때 그의 첫마디가 “이거… 큰일인데요”였다는 건 안 비밀(기사에 이미 썼습니다).
이희우 평론가는 2020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뒤에 실린 이희우 평론가의 해설(‘평범한 자는 들어오라’)을 아주 인상 깊게 읽었어요. 작품과 잘 조응하는 적확한 평론을 마주할 때 느끼는 짜릿함이 있거든요. 그런 해설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주의] 이 글은 김기태의 단편 ‘전조등’에 관한 약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최근 한 저녁 자리에서 김기태 소설가와 이희우 문학평론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게 어떤 조합이냐면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조합?
왼쪽부터 김기태 소설가와 이희우 문학평론가. /조인원 기자·이희우 제공 |
김기태 소설가는 작년 5월 출간한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문학동네)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는데요. 2022년 등단해 첫 소설집을 낸 신예 작가가 작년 본지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을 받는 이례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동인문학상은 한국 문단의 굵직한 중견급 이상 작가들이 주로 받아 왔거든요. 김기태 소설가에게 수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걸었을 때 그의 첫마디가 “이거… 큰일인데요”였다는 건 안 비밀(기사에 이미 썼습니다).
이희우 평론가는 2020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뒤에 실린 이희우 평론가의 해설(‘평범한 자는 들어오라’)을 아주 인상 깊게 읽었어요. 작품과 잘 조응하는 적확한 평론을 마주할 때 느끼는 짜릿함이 있거든요. 그런 해설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소설에서 우리는 정치적 구호와 다른 구호를 발견한다. 이 구호의 익히 알려진 의심스러움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이 구호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된다. 김기태가 가장 당대적인 방식으로 반복하는 구호는 이러하다. ‘평범한 자들이여, 들어오라’”
/문학동네 |
가장 많이 거론된 작품은 아무래도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일 겁니다. 제15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은 단편 ‘보편 교양’도 많이 언급 되더군요. 저 역시 1회독 땐 이 두 편을 가장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은 지 약 1년이 지난 시점. 두고두고 생각나는 단편은 ‘전조등’입니다. 그래서 이날 저녁 자리에서도 이 얘기를 꺼냈습니다.
황지윤: 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전조등’ 생각이 자꾸 나더라고요. 왜인지….
이희우: (맞장구치며) “‘전조등’… 아주 이상한 작품이에요.”
김기태: 시기적으로는 가장 먼저 쓴 작품인데요….
‘전조등’은 2022년 4월 ‘현대문학’에 처음 실린 단편입니다. 초고 작성을 기준으로는 등단작인 ‘무겁고 높은’보다 시기적으로는 더 먼저 쓰인 작품이라고 해요. 작년 11월 동인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소설가와 인터뷰했을 때 그는 ‘전조등’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최초 초고를 작성한 시점으로 볼 때는 ‘전조등’이 (소설집에서) 가장 먼저 쓴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삶에 대해서 내가 갖는 원형적인 감각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이번에는 이런 소설을 이런 형식으로 써볼까’ 하는 기획 이전에 좀 더 본능적으로 쓴 소설이다.”
김기태와 이희우의 첫 만남은 '소설 보다: 가을 2022'에 실린 대담 형식 인터뷰에서다. 문학과지성사가 선정한 '이 계절의 소설'을 앤솔로지 형식으로 싣는 시리즈. 이때 '전조등'이 선정됐다. /문학과지성사 |
그래서 ‘전조등’이 어떤 내용이냐면,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 수행에 너무도 능한 ‘그’에 관한 이야기. 벌이가 좋은 직장, 넓고 세련된 오피스텔,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친구…. 지독할 정도로 매끄러운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곧 청혼 예정인 여자친구를 조수석에 태우고 지방 도로를 달리던 ‘그’는 갑자기 ‘퍽’ 하는 소리에 차를 세웁니다. 나가보니 전조등은 깨져 있고 도로엔 ‘군청색 털 고무신’이 한 켤레 덩그러니 떨어져 있습니다. 대체 이 털 고무신은 어디서 나온 건지, 작가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사람을 치었을지도 모른다는 최악을 상상하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튀지 않더군요. 완벽에 가까운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조금 보고 싶기도 했는데요. 놀라우리만치 순탄했던 ‘그’의 삶은 고작 털 고무신 한 켤레 따위에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미끄러집니다. 매끄러운 삶 쪽으로.
이희우 평론가는 해설에 이렇게 썼습니다.
“’전조등’은 무난함 혹은 정상성의 기묘한 연극성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 하늘에서 떨어져 한쪽 전조등을 고장 내는 “군청색 털 고무신”처럼 기이한 조짐들이 있지만, 그는 이내 잊어버린다. 그가 꾸려나갈 중산층 가정의 무대 밖에 존재하는 어둠을 잊어버리고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작고 예쁜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왜 누군가는 저쪽으로 자연스럽게 미끄러질까? 불운이 드리울 틈이 없는 삶이란 무엇일까? 세상엔 ‘그’ 같은 삶이 많을까? 질문을 거듭하게 되는 소설입니다.
물론 저에게는 ‘그’의 삶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그’의 삶이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독자도 있을 겁니다. ‘그’의 삶을 평범이라고 인지하는 독자도 있을 테고, 거대한 ‘가면’으로 보는 독자도 있을 겁니다. 제 삶이 연극처럼 느껴저 슬픈 독자도 있을테고요.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 중에서 아마도 가장 다층적으로 읽힐 것 같은 소설입니다. 새삼 곱씹어 봅니다.
이야기(story)에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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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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