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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부자로 죽는 것은 불명예”

조선일보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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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일러스트=김성규


고대 그리스에서 ‘기부’는 부유한 시민의 공적 의무였다. 당시 아테네에선 축제가 빈번하게 행해졌는데, 술, 음식, 공연단을 준비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었다. 이 축제 비용을 부자 시민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아테네 광장에선 기부에 참여한 부자들을 칭송하는 행사가 열렸다. 기부에 ‘명예’라는 사회적 유인이 있었던 셈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이 왜 기부라는 선행을 할까. 진화생물학자들이 찾아낸 답은 인간 유전자에 ‘호혜적 이타주의’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원시시대에 인류는 집단을 형성하지 않으면 멸종에 처할 약한 존재였다. 인간보다 더 크고 빠른 포식자로부터 살아남으려면 ‘공동체’라는 울타리가 필요했다. 내가 가진 음식을 나눠주면, 내가 음식을 구하지 못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음식을 나눠줄 것이란 믿음이 ‘이타주의’를 이끌어내고, 이것이 인류의 멸종 방지 장치라는 것이다.

▶현대 뇌과학은 기부가 행복감을 높이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기부를 하면 쾌락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서 도파민 분비가 늘어난다. 행복 호르몬, 옥시토신 분비도 왕성해진다. 기부를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헬퍼스 하이(Helper’s high)' 현상도 있다. 미국 미시간 대학에선 기부에 참여한 노인들이 기부를 안 한 노인들보다 평균수명이 더 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다른 사람의 기부 행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면역력이 높아지는 ‘테레사 효과’(마더 테레사 수녀 이름을 딴 용어)도 확인됐다.

▶빌 게이츠(70)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부자로 죽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는 앤드루 카네기의 말을 인용하면서 1000억달러가 넘는 재산 99%를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20년간 모든 재산을 어린이 사망률 낮추기, 감염병 퇴치, 빈곤 해소 등에 쓴 뒤 게이츠 재단도 없애겠다고 했다. 사후에 재단을 통해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심마저 스스로 차단한 셈이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기부 모범 사례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전처 매켄지 스콧의 기부를 소개했다. 그녀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자, 이혼 위자료로 받은 돈 165억달러를 아무 조건 없이 전 세계 구호 단체에 뿌렸다. 재단 설립과 복잡한 서류 작업, 사후 평가 등 기부 활동에 스며든 ‘관료주의’를 배제하기 위해 구호 단체에 바로 돈을 꽂아주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수퍼리치 400명 중 자산 20% 이상을 기부한 사람은 11명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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