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담당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인 맷 머레이 대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9일 경북 경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센터 앞 APEC 정상회의 조형물에서 일행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
트럼프 2기 관세 부과로 세계 경제가 큰 혼란에 빠졌다. 품목관세, 상호관세가 과연 앞으로 어떻게 정해질 지 예측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이를 논의할 계기도, 주체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이 여러 국가와 돌아가며 '양자협의'를 하고 있지만 양자협의는 양자협의일 뿐이다. 미국은 자기 현안 해결, 상대국은 자국 관세 낮추는 데에만 관심있다. 국제사회 전체 측면에서 이 문제를 함께 다루고 정리하지는 못한다.
원래 이 역할은 세계무역기구(WTO)가 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WTO는 이를 담당하기 어렵다. 1995년 도입된 기존 협정 적용에 방점이 있어 국제사회의 새로운 현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는 어려운 까닭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나갈 것인지 흉금을 연 대화가 필요하다. 모든 틀이 정해져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WTO가 다루기 어려운 과제다.
그나마 지금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협의체는 바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다. 21개 회원(Member Economies)이 세계 GDP의 61%, 교역량의 49%를 차지한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 주요국 대부분이 참여한다. APEC은 법적 구속력있는 합의를 추구하지 않는 '부담없는' 논의 구조가 그 특징이다. 이를 이용해 그간 여러 현안들을 선제적, 실험적으로 논의하는 데에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이를 통해 다시 WTO나 자유무역협정(FTA)에 시사점을 주곤 헸다. 이제 APEC이 그 역할을 할 때다.
우연의 일치인지 APEC 정상회의가 올 하반기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가 의장국이다. 국제사회가 가장 어려운 시기, 우리가 APEC을 개최하게 되었다. 지금의 다급한 현안들을 논의할 결정적 계기다. 관세, 비관세,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여러 국가의 입장을 조율해 파국을 막을 중요한 기회다. 의장국인 우리 주도로 의제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APEC 정상회의로 ‘경주선언’이나 ‘경주의정서’라도 채택하게 된다면 향후 우리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일단 그 준비를 위해 APEC 통상장관회의가 다음 주(5월 15일-16일) 제주도에서 열린다. 미국발 관세 문제로 초래된 혼란이 최고치에 달한 시점에 주요국 통상장관들이 제주도에 온다. 문제가 워낙 복잡해 당장 타협안과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현재의 불을 끄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는 있다. 가령 일단 올 10월까지 관세 조치와 보복 조치를 유예하고 주요 사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구체적 스케줄을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위기는 동시에 기회기도 하다. 지금 국제사회는 전례없는 위기에 처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APEC을 기회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