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등 황선미 인터뷰
"죽음, 이별 등 다루지 못할 소재 없어"
"동화는 인간이 추구할 가치 이야기"
"귀여운 아기들아, 이제부터 엄마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해요. 들판이나 울타리 사잇길에서는 얼마든지 놀아도 된다. 하지만 맥그리거씨네 정원 안으로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단다."
아동문학의 고전 중 고전으로 꼽히는 영국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이야기'(1902) 중 한 대목. 엄마 토끼가 아기 토끼들에게 이렇게 신신당부하는 까닭이 있다. 아빠 토끼가 "맥그리거씨에게 붙잡혀서 그의 부인이 만든 파이 속에 들어가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1997년 어느 출판사의 책꽂이에서 우연히 이 책을 처음 펼쳐 읽었던 순간의 충격을 황선미(62) 작가는 이렇게 전한다. "뭐야, 토끼가 농부에게 붙잡혀서 죽고, 음식이 됐다는 이야기잖아! 이거 분명히 동화인데… 사랑스러운 책 모양에 그림도 앙증맞고 기껏해야 예닐곱 살짜리 대상의 이야기라고!"
"죽음, 이별 등 다루지 못할 소재 없어"
"동화는 인간이 추구할 가치 이야기"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은 황선미 작가가 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자신의 이야기 창작 과정을 담은 책 '어린이와 더불어 사는 이야기집을 짓다'를 펴들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
"귀여운 아기들아, 이제부터 엄마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해요. 들판이나 울타리 사잇길에서는 얼마든지 놀아도 된다. 하지만 맥그리거씨네 정원 안으로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단다."
아동문학의 고전 중 고전으로 꼽히는 영국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이야기'(1902) 중 한 대목. 엄마 토끼가 아기 토끼들에게 이렇게 신신당부하는 까닭이 있다. 아빠 토끼가 "맥그리거씨에게 붙잡혀서 그의 부인이 만든 파이 속에 들어가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1997년 어느 출판사의 책꽂이에서 우연히 이 책을 처음 펼쳐 읽었던 순간의 충격을 황선미(62) 작가는 이렇게 전한다. "뭐야, 토끼가 농부에게 붙잡혀서 죽고, 음식이 됐다는 이야기잖아! 이거 분명히 동화인데… 사랑스러운 책 모양에 그림도 앙증맞고 기껏해야 예닐곱 살짜리 대상의 이야기라고!"
예나 지금이나 동화에는 금기가 여럿 따른다. 당시만 해도 "똥이나 오줌 같은 더러운 것, 칼이나 피와 같은 위험한 것, 죽음 이별 같은 슬픈 것, 욕이나 이혼 등"을 다루는 것은 터부시됐다. 그런데 120여 년 전 출간된 동화에서 이미 잔인성이 최대치를 찍은 묘사가 등장했었다니.
최근 만난 황 작가는 "책을 펼쳐 든 순간 불이 켜지는 것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며 "금기 소재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다"고 돌이켰다. '피터 래빗 이야기'는 이후 그의 창작 방향을 바꿔놨다. 올해로 등단 30년,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화작가로 우뚝 섰다.
국내 대표 동화작가인 황선미 작가는 동화가 어린이 교육 지침서가 아닌 문학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남동균 인턴기자 |
"동화에서 다루지 못할 소재란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각각 100만 부 이상 팔린 '나쁜 어린이 표'(1999)와 '마당을 나온 암탉'(2008) 역시 동화는 해피 엔딩의 예쁜 이야기라는 편견에 맞선 이야기다. '나쁜 어린이 표'는 담임교사로부터 나쁜 어린이 스티커를 받고 화가 난 초등학생의 시선에서 썼다. 체벌이라는 예민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어린이는 물론 양육자와 교사의 공감을 사면서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 32개국에 번역 출간됐으며 애니메이션 영화와 연극으로도 재탄생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슬픈 결말이라는 아동문학의 금기를 깼다. 그는 "어린이에게 죽음이 없는 것처럼 가리면 가려지느냐"며 "죽음이 없는 것처럼 분리하지 않고 어린이가 공감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어린이가 동화의 주 독자이자 첫 번째 독자라는 사실은 변함 없지만 동화는 "인간이 지켜야 할 진실한 마음을 다루는 이야기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본질적이며 가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더불어 사는 이야기집을 짓다·황선미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176쪽·1만8,000원 |
그는 동화가 어린이 교육 지침서가 아닌 문학임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동화를 어린이의 전유물로만 보지 않기를, 모두가 공감할 정도의 설정과 묘사로 어떤 소재든 다룰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근 출간된 '어린이와 더불어 사는 이야기집을 짓다'에는 이 같은 그의 동화창작론이 담겼다.
책에는 동화 창작을 위한 구체적 조언이 가득하다. 그는 "동화는 서사 문학의 요건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어린이의 이해를 중심에 둬야 하므로 소설과 달리 좀 더 어린이 시각에 맞춰진 섬세한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나 역시 이 대상(어린이)을 이해하고자 고민하고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동화를 쓸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당연히 어린이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