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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하루] '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 출생

서울경제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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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 중에 ‘로마의 휴일(1953)’과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이 있다. 두 영화의 여주인공이 오드리 헵번이다. 배우로, 패션스타로, 봉사활동가로 활약했던 그녀는 1929년 5월 4일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세계적인 배우로 성공하기까지 그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부모의 별거 이후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지만 2차대전이 발발하자 파시즘에 가담한 부친 때문에 다시 외가가 있는 네덜란드로 갔다.

잠시 누리던 평온도 나치 독일의 네덜란드 침공으로 파괴됐다. 지역의 명사인 외할아버지가 점령군에 협조하기를 거부하면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저택에서 추방됐다. 헵번은 어린 나이였지만 외가의 영향 속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후 기근이 발생하자 가족 모두가 쓰레기통을 뒤지며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몰락해버린 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가정부 일까지 마다하지 않은 어머니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좋아하던 발레 수업도 이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무명의 삶을 이어가던 그녀에게 비약의 기회가 찾아왔다. 오디션을 거쳐 그레고리 펙의 상대역으로 열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 덕분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탔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문리버’를 불러 세기의 연인이 된 그녀는 1989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영혼은 그대 곁에’를 끝으로 화려했던 배우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 헵번은 유니세프 대사로서 전 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어린이 구호 활동을 전개했다. 암과 싸우면서도 섬김을 이어갔다. 환한 미소로 봉사하는 그녀의 모습은 배우 시절 이상으로 찬사를 자아냈다. 그녀는 2차대전 직후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연명했던 경험을 잊지 않았다. 1993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그녀의 봉사 활동을 계속됐다. 그녀는 생전에 이 말을 남겼다. “나이가 들면서 2개의 손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손은 자기 자신을, 다른 하나는 타인을 돕기 위한 것이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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