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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쇼트트랙 국대 임종언 “세 번의 부상에도 1등 위해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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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국가대표 임종언이 지난 4월13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25∼2026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2차 선발전 남자부 1000m 예선에서 역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종언이 지난 4월13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25∼2026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2차 선발전 남자부 1000m 예선에서 역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짧은 반바지 차림 속 양다리에는 군데군데 흉터 자국이 선명했다. 또래들이 좀처럼 겪기 힘든 큰 사고를 3번이나 치른 17살 임종언은 “1등 하기 위해서, 1등 했을 때의 성취감을 잊을 수 없어서 더 열심히 했다”고 말하며 물끄러미 두 다리를 바라봤다.



한국 빙상계는 혜성처럼 나타난 고교생 스케이터의 등장에 들떠있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황대헌을 끝으로 8년 만에 고등학생이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간 국제대회에서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는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실업팀이 활성화돼 선수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영향도 있지만, “세대교체가 늦어지고 있다”는 목소리 또한 커져만 갔다.



지난 시즌(2024∼2025)까지 주니어 국가대표였던 임종언의 등장은 빙상계의 이런 우려를 말끔하게 지워냈다. 올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세계선수권 4관왕(1000·1500m·남자 계주·혼성 계주)에 올랐던 임종언은 지난 4월 생애 처음 출전한 2025∼2026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전체 1위에 올랐다. 코너 한가운데에서 바깥쪽 코스로 여러 명을 제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본 관객과 선수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경쟁자들은 8초 초반대 랩 타임으로 세 바퀴 이상을 도는 임종언을 따라잡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폭발적인 추월 능력을 선보였던 그는 선발전 1·2차 1500m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종언이 지난달 30일 서울 노원구 삼덕스포츠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종언이 지난달 30일 서울 노원구 삼덕스포츠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지난달 30일 서울 노원구에 있는 삼덕스포츠에 만난 임종언은 선발전 1등의 비결을 묻는 말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기에 조용히 팀에서 운동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장거리에서의 속도 한계점이나 체력을 더 끌어올려 제 장점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했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겨울올림픽행 티켓을 거머쥔 뒤 인터뷰 요청이 빗발쳤지만, 임종언은 외부와 접촉을 최소화한 채 몸만들기에 돌입했다.



임종언은 스케이트 부츠를 처음 신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고등학생 형들의 훈련량을 따라가며 강하게 컸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함께 경쟁하며 발전할 수 있는 동료가 없어 사실상 홀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왔다. 임종언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또래 선수들의 훈련량의 3배 이상을 소화했다. 유일하게 쉬는 토요일에는 집 근처에서 달리기하며 체력을 보강했다”고 미소 지었다. 임종언을 가까이서 봐왔던 빙상계 관계자는 “겸손하다. 재능과 노력을 두루 갖춘 선수”라고 귀띔했다.



혹독한 훈련으로 또래들에 견줘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시련도 컸다. 임종언의 오른쪽 허벅지 안쪽에는 아이 손바닥만 한 흉터가 남아 있다. 초등학교 시절 훈련 도중 왼쪽 스케이트 날에 찍혀 생겼다. 오른쪽 발목 안쪽과 바깥쪽에도 수술 자국이 남아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시합 도중 넘어져 정강이뼈가 부러져 수술대에 올랐다. 보조기 없이 걷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왼쪽 발목이 부러졌다. 이때는 3개월만 쉬고 곧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큰 사고를 겪을 때마다 부모는 운동을 그만두길 바랐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조금 더 쉬어라”고 타이를 때도 임종언은 홀로 택시를 타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는 “항상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금 쉰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한번 쉬면 자연스럽게 계속 쉬게 될 것 같아 한계까지 저를 몰아붙였다”며 힘들었던 재활 시기를 떠올렸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라는 말에는 “스케이트 타는 게 너무 즐거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종언. 연합뉴스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종언. 연합뉴스


임종언은 2018 평창겨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의 모습을 보고 올림픽을 향한 꿈을 키웠다. 린샤오쥔 역시 평창겨울올림픽 전까지 7번의 골절 수술을 받았다. 임종언은 “임효준 선수 역시 부상을 많이 당했는데 그런데도 남들보다 노력해서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저 또한 이런 점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한 쇼트트랙 지도자는 “과거의 임효준과 지금의 임종언은 비슷한 점이 많다. 중장거리가 주종목이고 몸싸움을 피하고 아웃 코스 추월을 주로 사용한다”고 평가했다.



임종언이 롤모델로 삼는 선수는 단거리(500m) 최강자 김태성(화성시청·23)이다. 이번 선발전에서 6위에 오른 김태성은 태극 마크를 달았지만, 상위 5명에게 주어지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겨울올림픽행 티켓을 따내진 못했다. 김태성과 오랜 기간 함께 운동했던 임종언은 “앞에서 레이스를 이끌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저 또한 체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선두에서 레이스를 이끄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임종언의 레이스 스타일은 기존 태극 전사들이 추구해온 전략과는 다르다. 한국은 과거 체력·기술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후미에서 치고 올라오는 전략을 많이 썼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원래 속도가 빨랐던 유럽 선수들이 체력을 키우면서 추월 타이밍을 잡기가 한층 더 어려워졌다. 임종언은 태극 마크를 단 뒤 유럽·캐나다 선수들의 스케이팅이 담긴 영상을 주로 보며 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는 “저는 코너에서 빠져나올 때 왼발을 잘 눕혀 밀어내 속도가 남들보다 빠르다”며 “시니어 국제 대회에서 얼른 제 레이스를 펼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종언이 지난달 30일 서울 노원구 삼덕스포츠에서 새 부츠를 신어보고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종언이 지난달 30일 서울 노원구 삼덕스포츠에서 새 부츠를 신어보고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임종언은 오는 10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 투어 1차 대회에서 시니어 데뷔전을 치른다. 캐나다의 윌리엄 단지누(세계 1위), 네덜란드의 옌스 판트바우트와 치열한 레이스가 예고돼 있다. 임종언은 “속도와 체력에서 캐나다, 네덜란드가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좋다”면서도 “쇼트트랙 월드 투어에서 제가 생각한 대로 레이스를 풀어간다면 1등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3년간 신었던 부츠는 내년 올림픽에서 꺼내려고 고이 모셔뒀다고 한다. 그는 당분간 삼덕스포츠에서 특별 제작한 부츠를 신고 뛴다.



“항상 시합 들어가기 전에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믿고 후회 없이 하고 나오자’ 고 말하고 경기에 임한다.” ‘빙판 위에 올라선 순간 무슨 생각을 하나’라는 질문에 임종언은 이렇게 답했다. 어린 나이지만, 포부는 당차다.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부끄러움 없는 선수로 성적도 내면서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밀라노를 향한 임종언의 첫 날갯짓이 곧 시작된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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