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한겨레 자료사진 |
대통령 선거가 한달도 남지 않았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기후변화와 기술변화에 따른 산업 전환이 화두가 되면서 ‘좋은 일자리’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도 크다. 대선 후보들의 일자리 공약 경쟁이 본격화될 가운데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이 새 책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생각의힘)를 최근 내놓았다. 노동경제학자이자 20년 넘게 아이엘오에서 고용·노동 정책을 담당했던 그는 ‘일하는 삶’의 관점에 선 일자리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좋은 일자리’란 무엇일까. 이 국장은 지난달 29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좋은 일자리’의 전제조건으로 △노동자가 안전해야 하고 △적정한 소득을 보장받으며 △일터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차별 없이 존중(respect)받는 일자리를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 기준에 따라 최하위 계층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지원과 보호가 보장되는 정책이 좋은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일자리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일자리는 결국 기업이 만드는 것’이라며, 기업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국장은 시장이 아니라 사회 안에 존재하는 기업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는 원·하청 노동자의 격차 문제를 지적하면서 “하청 노동의 문제는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와 같은 불공정한 경쟁 문제에서 시작되고, 이를 해결하면 한국의 노동시장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된다. 일자리를 만드는 게 기업이라면, 이에 합당한 기업들의 책임이 필요하다”며 “기업들이 공정한 경쟁 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렇지 못해 발생한 비용을 사회나 정부에 전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 국장은 북유럽 국가들의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이 전체 일자리의 30%를 넘는다는 점을 들어, 좋은 일자리를 기업‘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특히 최근 ‘일자리 미스매칭’으로 인해 구직활동을 단념하는 ‘쉬었음 청년’이 증가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정부가 청년 일자리가 없다고 개탄하고 걱정한다면, 공공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기업도 일자리 질을 높일 수 있는 유인이 생기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공공이 만드는 일자리는 단시간·임시직이여서는 안된다고 이 국장은 주장한다. 그는 “지속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유용성이 있는 일자리로 디자인해야 한다”며 “최저임금 일자리 1천개를 만들 예산이 있다면, 최저임금보다 많이 주고 장래성이 있는 일자리 600~700개를 만드는 것이 낫다”고 했다.
이 국장은 ‘사회서비스’를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수 있는 분야로 꼽으면서, 이 일자리에 대한 가치가 과소평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일자리 질이 낮다는 지적을 받는 ‘돌봄 일자리’ 정책이 “한국 노동시장에서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돌봄 일자리는 여성과 남성이 노동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서 매우 중요하다”며 “지금이 돌봄 일자리를 사람들이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의미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자리로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돌봄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드려는 노력보다, 비용의 관점에서 ‘값싼’ 이주노동으로 대체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는 돌봄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국장은 이주노동 정책에 대해 정부의 ‘전략없음’을 비판했다. 그는 “이주노동에 대해 기업은 싼 노동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고,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불법이냐 아니냐만 생각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비정규노동자 아래 이주노동자 계층이 자리하는 노동시장의 ‘게토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이어 “최소한 국무총리 산하에 이민청을 신설해 일자리와 사회·경제·문화 등을 총괄하게 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체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책에서 장시간 노동의 반인간성과 비경제성을 강조한 이 국장은 최근 근로시간 관련 논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기업들은 ‘주 52시간 노동상한제’(주 52시간제)의 경직성을 비판하며 ‘근로시간 유연화’를 주장하고, 노동계는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주 4일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해서는 “기업과 노동자에게 모두 이득이 되려면 주 40시간제가 철두철미하게 집행돼야 하지만, 한국은 주 40시간제, 52시간제도 흔들리고 있다”며 “근로시간 유연화는 노동시간 차원에서 하층부를 구성하는 (장시간)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 주장에 대해서도 “장기적인 목표의 당위성에 대해 동의한다”면서도 “현재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적정한 노동시간을 일하면서 생활임금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핵심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유행을 따라가는 공약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강조한 일자리 정책을 짜기도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만들 수 있는 일자리는 상당히 제한적”이라며 “아직도 건설·제조·농업 등에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많다. 기본을 튼튼히 한 정책을 신뢰하고, 그런 정책이 정치인의 진정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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