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트럼프' 극우 정당 대표, 루마니아 대선 1차 투표 '압승'

"MAGA 지지" 밝혀온 극우 성향 시미온
"광장에서 가죽 벗겨야" 막말로도 유명
결속동맹 창당 약 6년 만에 대통령 성큼

극우 민족주의 성향으로 분류되는 루마니아 제1야당 결속동맹(AUR) 대표 제오르제 시미온이 지난 2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미온은 4일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압도적 1위에 올랐다. 부쿠레슈티=로이터 연합뉴스

루마니아의 극우 민족주의 성향 정당 대표가 4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선거 1차 투표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차별 관세 정책으로 인해 최근 캐나다와 호주 총선에서 반(反)트럼프 성향 여당이 집권 연장에 성공했으나, 극우정당 인기가 높은 루마니아에선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루마니아 언론 아데버룰 등에 따르면 제오르제 시미온(39) 결속동맹(AUR) 대표는 대선 1차 투표에서 40.96%를 얻어 1위에 올랐다. 2위 니쿠쇼르 단 부쿠레슈티 시장 득표율(20.99%)의 두 배에 달했다. 여당인 중도 좌파 성향 사회민주당(PSD)을 이끄는 마르첼 치올라쿠 총리는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5일 총리직을 사임했다. 루마니아는 대통령이 외교·국방을 담당하고 총리가 행정 실권을 쥐는 이원집정부제 국가다.

이번 선거는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1월 대선에 대해 '러시아 개입'을 이유로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다시 실시된 것이다. 당시 1위에 올랐던 극우 인사 컬린 제오르제스쿠 후보가 헌재 판결로 재출마할 수 없게 되자 당시 4위였던 또 다른 극우 인사 시미온 대표가 이 표심을 그대로 흡수하며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그는 지난 3월 제오르제스쿠의 재선 도전을 막은 이들을 향해 "광장에서 가죽을 벗겨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최근 몇 년간 급속도로 지지세를 불려온 극우 정당들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수백만 명의 인구가 해외로 이주 노동을 떠나는 등 경제·사회적 불안정이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면서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를 펼치는 극우 정당이 반사 이익을 누렸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최근 AP통신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념이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종료된 후 부쿠레슈티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제오르제 시미온 루마니아 제1야당 결속동맹(AUR) 대표의 지지자들에 대한 연설이 나오고 있다. 부쿠레슈티=AP 연합뉴스

시미온 대표가 외교·안보를 담당하는 대통령직에 오르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및 유럽연합(EU) 내 균열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가 친(親)러시아·반(反)우크라이나 성향으로 분류되는 데다, EU 체제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는 점에서다. 우크라이나는 그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도 취한 바 있다. 그의 강한 '친트럼프' 성향 탓에 미국과의 관세 협상 등에서 EU 내 단합을 깨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치올라쿠 총리가 물러남에 따라 PSD가 포함된 연립정부는 붕괴 수순을 밟게 됐다. 연정이 단일 후보로 내세웠던 크린 안토네스쿠 전 상원의원은 이번 투표에서 3위에 그쳤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